‘역사의 라이벌, 원효와 의상’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10.03.10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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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상물 ‘역사의 라이벌, 원효와 의상’을 본 후 감상문
목차
없음
본문내용
원효와 의상, 그 둘은 서로 라이벌 의식을 가진 관계가 아닌, 진정한 도반이었다. 진정한 도반으로서 서로 이끌어주고 당겨주는 이상적인 도반으로서, 서로 상대에 대한 존경과 우정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둘은 더없는 도반이었던 것은 분명하나 서로 여러 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우선 이들은 출신 배경부터 이성에 대한 사랑, 학문적 경향까지 차이를 보였다. 의상은 진골귀족 출신이었고, 원효는 육두품 출신이었다. 둘은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현장법사를 찾아가던 중, 비를 피해 한 동굴로 들어가게 된다. 유명한 해골물을 마신 이야기가 바로 여기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에 오랜 꿈에서 깨어났음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은 원효는 결국 유학을 포기하고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는 스스로의 깨달음을 실천해 나가기 시작한다. 인식이 존재를 귀존하고 인식 속에서 존재함을 깨달은 것이다. 반면에 의상은 다시 당나라로 향해 화엄종 체계를 배워온다. 의상이 당나라에서 귀국하게 된 동기가 당나라의 신라 침공 계획을 알리기 위한 것임을 볼 때, 의상은 강렬한 국가의식을 갖고 있는 정치적 인물로 보인다. 반면에 원효는 대중성이 강했다. 즉 원효의 사상과 행적에는 국가적 내지 호국적인 면모가 없다. 원효가 개인적 깨달음을 주장했다면, 의상은 거대한 불교체제 속에 들어와야 깨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들의 사랑 역시 차이를 보인다. 원효는 요석공주에 대한 마음을 시로 표현하여 불렀고, 이를 해석한 태종에 의해 둘은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즉, 원효는 다시 세속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반면에 의상은 당에 도착하여 잠시 신도의 집에 머물면서 만난 선묘라는 처녀의 마음을 거절한 채 수행에만 정진한다. 후에 귀국길에 다시 선묘의 집을 들리게 되고, 십년 간 그를 기다린 선묘를 뒤로 한 채 귀국행 배를 탄다. 선묘는 나루터로 달려가 대룡이 되어 저 배를 지키고 의상의 불법을 이루어지도록 하고자 바다에 몸을 던진다. 후에 선묘룡은 부석사를 지을 때도 의상을 돕는 등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물론 원효의 사랑이야기는 실화이고, 의상의 사랑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설화이다. 그러나 의상의 사랑이야기가 어딘지 모르게 더 영웅화 되어있다고 느껴진다. 이는 아마도 당시 신라에서 의상을 절대적으로 높게 칭송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 자료
영상물 ‘역사의 라이벌, 원효와 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