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
- 최초 등록일
- 2010.03.04
- 최종 저작일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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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온돌에 대해 정리한 자료입니다.
목차
온돌이란
온돌의 역사
온돌의 구조
온돌의 장 단점
온돌의 우수성을 아끼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
참고문헌
본문내용
lqsl1. 온돌이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구들고래를 만들고 고래 위에 구들장을 놓아 아궁이를 통하여 받아들인 열을 구들장에 저장했다가 서서히 복사열을 방출하여 방바닥이 따뜻해지도록 고안된 난방구조이다. 이를 중국에서는 항이라 하고 한국에서는 구들이라고도 한다. 온돌과 항은 그 외형과 재료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으나 그 구조와 방법이 동일하고 원류도 같다.
.온돌의 역사
(1)신석기 시대
신석기인들의 주거는 움집으로 중앙 또는 중앙 가까운 곳에 냇돌이나 판석으로 주위를 돌리거나 진흙으로 둑을 쌓은 화덕자리가 있다. 이 화덕은 취사용 화덕이지만 난방과 야간 조명도 겸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두만강 유역의 서포항유적 제1기층의 집자리 9호에서는 여러 개의 화덕자리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취사용과 난방용을 분리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2)청동기 시대(B.C. 1000~300)
청동기 시대에도 역시 움집이 일반적인 주거 형태였으며, 화덕의 위치가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움의 중앙에서 벽쪽으로 치우쳐 있고, 화덕이 2개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아 취사용과 난방용을 구분하여 사용했던 듯하다. 예를 들어 함경북도 회령 오동 제2기 집자리 8호에는 움 안에 2개의 화덕자리가 있는데, 동남쪽 화덕은 방바닥을 파고 그 둘레를 막돌 8개로 둘러쌓았으며 재가 차 있던 것으로 보아 항상 불을 피우던 취사용이고, 서북쪽 화덕은 방바닥 위에 진흙으로 둘러싼 것으로 불피운 흔적만 있어 추운 겨울에만 불을 피웠던 난방용으로 추측된다.
(3)철기 시대(B.C. 300~A.D. 1)
철기시대에도 일반주거는 움집이었으나 움 안에서 ㄱ자형 구들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어 난방시설에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원 서둔동 주거지의 난방시설은 움의 북벽에 한 변의 길이가 약 30㎝인 얇은 흙벽돌을 30㎝ 간격으로 양 옆면에 세우고 그 위에 똑같은 크기의 벽돌을 덮어서 방30㎝ 크기의 터널형 구들을 구축하고, 서단에서 다시 서벽을 따라 굽어져 아궁이를 만들고 동단에서 벽에 붙여 굴뚝을 높이 쌓아 지붕 위로 뽑아 올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ㄱ자형 구들의 아궁이가 취사와 난방을 겸한 것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참고 자료
1) 김남응, “문헌과 유적으로 본 구들이야기 온돌이야기”,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4
2) 강영환, “한국 주거문화의 역사”, 기문당, 1993
3) http://www.goodle.com/product1.html
4) http://primary.edupia.com/schoolbook/soc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