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건국 삼걸전을 읽고

저작시기 2001.05 |등록일 2002.04.29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신채호가 쓴 '이태리건국 삼걸전' 입니다.
매우 잘 정리 되어 있다고 자부합니다.
도움 많이 되시길..

목차

없음

본문내용

다시 `청년 유럽`이란 당을 조직하게 된다. 밖으로는 주변국들의 상황을 살피고 안으로는 동포의 미몽을 깨우는 상황이 10년 동안 계속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도망친 기리발디는 남아메리카로 망명하게 되고 14년 간의 망명 생활동안 고국의 지사들을 규합하여 정신적으로 서로 힘을 복 돋운다.
또한 리우그란데와 우루과이 전쟁을 도우면서 많은 부하들과 함께 전쟁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때 아니타로 알려진 한 여인을 만나 1842년 결혼하게 되고,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온 가리발디는 1849년 마찌니와 함께 로마 공화국 사수를 위해 싸웠으나 공화국이 함락 된 뒤 도피 중 죽게 된다.
1846년에는 로마 교황 피우스 9세가 즉위하게 된다.
마찌니는 통일을 제창 공화정치체제를 부르짖지만 카부르는 연합을 제창하며 통일은 말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하며 정치적으로 마찌니와 충돌하게 된다.
1848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그 영향으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민당이 봉기하게 된다.
이에 샤르데냐 왕 알베르토는 국민당의 수령이 되어 오스트리아에 대항하지만 지고선 제위 4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로마 교황 피우스는 국민 운동을 극렬 반대하며 오스트리아에 아첨하게 되고 결국 나폴리로 몰래 달아난다.
이에 마찌니와 가리발디는 즉시 로마로 들어가 1849년에 로마 공화국 창립하며 독립 선표하게 된다.
이에 분개한 교황 피우스는 프랑스에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리고는 프랑스 나폴레오 3세가 피우스의 건의로 로마로 진격하게 되고 수적으로 적은 가리발디와 마찌니는 패배하고 로마를 다시 빼앗기게 된다.
1949년 이후 14년 간이나 은둔을 하고 있던 카부르가 사르데나의 새 왕인 에마누엘과 함께 이태리의 통일을 위해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물론 카부르가 외교적 수완이 좋았고 여러 가지로 카부르에 인해서 이태리 통일에 한 걸음 다가가지만 이전의 마찌니에 의해 그 기반이 닦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찌니가 밭을 갈고 카부르가 수확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재상이 된 카부르는 상당한 내정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백성을 위한 개혁을 단행.
카부르가 재상이 된 뒤 상당한 외교 정책을 벌이게 되고 이는 이탈리아 통일에 대단한 기여를 하게 된다.
카부르는 19세기 유럽 제일의 외교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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