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인물(신헌)
- 최초 등록일
- 2010.02.01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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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대사인물(신헌)
목차
<신헌>
<이재명>
본문내용
<신헌>
실학과 개화파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 군사제도 수립에 노력했으며, 강화도조약과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때 조선측 대표로 참여했다. 본관은 평산. 초명은 관호. 자는 국빈, 호는 위당·금당·동양·우석.아버지는 부사 의직이다. 전형적인 무관가문에서 태어났다.
노론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당대의 석학이며 실학자인 정약용 사숙하고 김정희의 문하에서 실사구시적 학문을 배웠다. 그리하여 무관이면서도 독특한 학문적 소양을 쌓아 유장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초 의 개화파 인물들인 선사, 강위, 정약용의 장남인 정학연, 박규수 등과 사귀면서 무신임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지식을 겸비했다. 1827년 할아버지 홍주의 후광을 업고 별군직에 차출되고, 이듬해 무과에 급제, 훈련원주부에 임명되면서 본격적으로 관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순조, 헌종 ,철종, 고종조에 걸쳐 중요 무반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828년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주부에 임명된 이후 중화부사, 전라도우수군절도사, 전라도병마절도사, 도총부부총관 등을 역임했다. 1843년 전라도우수사로 재임하던 시절에 해남 대둔사의 초의선사와 교유하면서 불교에도 상당한 관심을 두었다. 이 밖에 농법에도 관심을 가져 농축회통이라는 농서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1849년 헌종이 죽고 철종이 즉위한 후 권력을 장악한 안동김씨 일파에게 배척을 당하여 전라도 녹도에 유배되었다. 1853년 감형되어 무주로 이배되었다가 철종의 배려로 1857년에 풀려난 후 좌승지·삼도수군통제사·형조판서·한성부판윤·공조판서·우포도대장을 지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