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영국의 정치문화
- 최초 등록일
- 2009.12.27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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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종교개혁이 영국 정치문화에 미친 영향에 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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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근대의 영국은 가장 먼저 산업 자본주의 체제로 접어들어 사회적 동요를 겪지 않고 복지국가로 발전하여 체제안정과 개혁적인 정치문화가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 안정화에 기여한 요인으로 의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확립, 왕실의 온건한 태도, 그리고 귀족계급의 체제발전에의 기여한 점과 경제발전을 주 요인으로 보지만, 이외에 영국에 있어서 그리스도교는 종교로써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 교는 대중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면서, 영국의 개혁주의 정치 문화를 형성하는데 기여 하여 근대 영국의 안정화에 기여 하였다.
영국 국교회는 체제 순응적인 종교였다. 18세기 경쟁하는 교회 세력이 거의 없는 상태로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띠고 일체성을 보였다. 이러한 국교회에 대해서 국가는 보호와 특권을 부여하였다. 당시의 군주는 국교회의 일원임을 선서하고, 국민들도 국교회를 믿는 것은 종교적의무이며, 시민으로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었다. 국교회의 성직자들은 십일조를 받을 권리와 관직취임에 대한 특권을 얻어 힘이 막강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국교회 성직자들은 교회일보다는 바깥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신분상승을 꾀하며 교구에서 보내는 시간만큼이나 정치활동에 힘을 쏟게 되었다. 또한 귀족이 주도하는 후원제도는 교회를 경직시키고 내부적 개혁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교회는 성직겸임, 부재성직자, 출세 제일주의가 지배적 경향이 되었다고, 소득의 불균형도 큰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들은 소득과, 지위가 향상되면서 해소되어갔다. 상당수의 성직자들은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유산계급의 엘리트가 되어갔고, 교회와 국가가 강력하게 결속을 다진 시기에 절정에 달하였다. 이렇듯 성직자의 지위가 크게 상승하자, 종교적인 열성이 줄어들어 대중의 마음을 끌만한 신비적이거나 정서적인 요소들은 없었다. 또한 현상유지와 안정을 유지하는데 더 비중을 두어 신자들이 도시, 시골이나 할 것 없이 등을 돌리게 되었다.
이러한 국교회가 채워주지 못한 ‘영적 공허감’을 메우기 위해 등장한 것이 신앙의 대중화 운동인 감리교 운동이다. 이 운동은 복음주의 운동의 한 흐름으로 출현하였다. 복음주의가 출현하게 된 이유는 교회의 부패와 쇠약함, 그리고 대중의 신앙약화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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