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의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에 관하여- 실패한협상
- 최초 등록일
- 2009.12.26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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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패한 협상에 관해 조사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Ⅰ. 협상의 대상
1)협상의 대상
2)역사적 고찰
Ⅱ.협상의 과정
1)협상의 시작
2)제1차 정부간 협상기(1992년 7월~ 1999년 2월)
3)학술전문가 협상기(1999년 3월~ 2004년 8월)
4)제2차 정부간 협상기(2004년 9월~ 현재)
Ⅲ.협상의 분석
1) 협상의 기본 원칙
(1)사람과 문제를 분리한다.
(2)상호이익이 되는 선택적 대안을 개발한다.
(3)입장이 아닌 이해관계에 바탕을 둔다.
(4)객관적인 기준을 사용한다.
(5)주고 받는다
2) 협상의 전략
3) 협상의 전술
(1) 지연전술
(2) 연계전술
(3) 양면게임이론
Ⅳ. SWOT분석
1) 요소 분석
(1)Strength(강점)
(2)Weakness(약점)
(3)Opportunities(기회)
(4)Threats(위협)
2) 전략 수립
(1)SO전략(촉진전략)
(2)ST전략(대응전략)
(3)WO전략(모색전략)
(4)WT전략(회피전략)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협상의 대상
1)협상의 대상
한국과 프랑스의 협상대상이 되었던 것은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 외규장각에 있었던 191종 297권의 의궤(儀軌)였다. 의궤란 조선 왕조 당시 왕실이나 국가의 각종 행사에 대한 시작과 준비과정, 의식절차, 진행, 행사 유공자에 대한 포상 등의 사실을 정리한 기록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국왕의 책봉과 왕실의 결혼 및 장례 등과 같은 국가와 왕실의 행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의궤는 한 나라의 문화유산으로서 귀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의궤는 다시 어람용 의궤와 비어람용 의궤로 나눠진다. 어람용 의궤란 왕실의 의전 행사에 참고하기 위해 왕이 친히 보던 의궤를 의미하고 비어람용 의궤는 그렇지 않은 의궤를 의미한다.
2)역사적 고찰
의궤가 프랑스로 가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1866년 병인양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원군은 1866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그 당시 조선에는 12명의 프랑스 선교사가 있었는데 이 탄압으로 9명이 체포되어 순교하고 3명이 조선을 탈출하게 된다. 이러한 박해의 소식은 탈출한 선교사 중 한 명인 라델에 의하여 당시 천진에 있던 프랑스 극동함대의 사령관인 로즈제독에게 알려졌다. 이에 로즈제독은 7척의 군함을 이끌고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와 강화도 서북단의 갑곳진에 상륙하였다. 1866년 11월 7일 정족산성을 공격하던 프랑스군이 양헌수 장군의 부대와 싸워 패하자 강화성에 있던 장년전, 외규장각 등 공공시설에 불을 지르고 8700권 이상의 서적과 3,800달러(당시의 화폐가치)의 금은괴 등을 훔쳐 달아났다. 이 때 훔쳐간 서적 가운데는 현존 세계 최고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이 포함되어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