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와 문화 경주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9.12.20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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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주 답사기 쓴것입니다.
사진도 들어있으니 내용만 조금 고치시면 될 듯 합니다.
목차
1
본문내용
요즘 우리나라는 인터넷, 텔레비전 어디서나 선덕여왕 열풍으로 뜨겁다. 무려 일천 년간 왕조가 지속되었고 유래없는 여왕이 탄생했던 나라, 1500년 전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 있지만 다른 나라, 신라의 왕도였던 경주와 대화를 하기 위해 떠났다.
친구들과 아침 일찍 경주로 떠났다. 원래 자전거를 타며 돌아다닐 생각이었지만 비가 와서 다음으로 미루고 차를 렌트하여 답사 길에 올랐다. 그 첫 답사지는 선덕
그림1.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30호)
여왕 3년 만들어진 분황사지였다. 이곳은 신라의 석탑가운데 가장 오래된 이 절의 백미인 모전 석탑(국보 제 30호)이 있다. 현재는 3층의 높이로만 남아있으나 원래는 7층 내지 9층의 높이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1층 네 면에는 감실
하지만 슬픈 사연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신라 경애왕4년(927년) 이 곳에서 연회를 베풀다가 후백제 견훤의 기습으로 비참하게 최후를 마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었다는 학설이 나와 새롭게 재조명이 필요한 곳이다. 사적 1호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이 곳을 찾는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포함하여 3무리 정도만이 있었고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운 지식만으로 둘러보며 실망하고 주변 경치만을 구경 할 뿐이었다. 그러나 포석정이 사적1호로 지정 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포석정은 너비 30cm에 깊이 20cm 총길이 22m의 작은 석조 석에 굽이치는 굴곡 마다 술잔이 회오리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느리게 굽어도는 물 흐름의 깊은 과학적 원리를 신라시대의 조상들의 과학적 창의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포석정은 중국의 유상곡수연 놀이를 본 따서 만들었다고 하며 중국의 대문장가인 왕희지는 친구들을 불러 놓고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 한 수를 지어서 읊어야 하며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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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