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통감
- 최초 등록일
- 2009.12.16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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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국통감
목차
Ⅰ. 머리말
Ⅱ.《東國通鑑》의 편찬배경과 목적
Ⅲ.《東國通鑑》의 서술과 내용
Ⅳ.《東國通鑑》의 사론
Ⅴ.《東國通鑑》의 사학사적 의의
Ⅵ.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동국통감》은 우리나라 최초의 관찬통사이면서 근대 이전의 국사체계의 기준이 되었던 사서로서 우리나라 사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동국통감》에 대한 연구성과는 적은 편이다.
이 글에서는 《동국통감》의 편찬과정과 그 내용, 그리고 사론 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동국통감》의 사학사적 의의를 알아보고자 한다.
Ⅱ.《東國通鑑》의 편찬배경과 목적
《동국통감》은 1458년(세조 4) 4월에 세조가 문신에게 명하여 편찬작업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서기는 탈락이 있어서 자세하지 못하므로 삼국사와 고려사를 합쳐서 편년체 사서를 만들고자 한다.”고 편찬의도를 밝혔으며, “여러 사서에서 채집하여 년별로 기록하라”고 하였다. “《동국사략》《삼국사기》《고려사》등의 사서를 참작손익하여《동국통감》을 편찬하여 후세에 보이고 고열에 편하게 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요컨대 세조의 편찬목적은 고대사에 대한 개찬이었으며,《삼국사절요》가 앞서 완성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세조 3년 5월에 팔도관찰사로 하여금 사처 혹은 사원에 소장된 각종 고기류를 모아들이도록 하명했다. 이 때 진상령이 내려진 서책들은 상고사나 설화, 전설, 기담, 민간신앙과 관련이 많으며 단군조선 중심의 역사를 다룬 자료들이라고 짐작되는 것들이다. 즉 세조는 수사의 기본 방향이 군주와 왕실 입장이었던《고려사》를 중심으로 고려시대사를 정리하고《삼국사기》와《동국사략》등에서 탈락된 상고사 부분을 고기류로써 보충하여 단군조선 이 중심이 된 고대사의 재구성에 주력하려 했던 것이다. 세조가 이러한 역사인식을 이루는 데에는 양성지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
양성지는 국방강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고, 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단군신앙과 관련된 태백산․묘향산․구월산의 치제를 주장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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