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공산성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9.12.16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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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공산성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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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교수님께서 답사를 공주 공산성으로 정해주셨을 때 굉장히 낯설었다. 생각해보니 학창시절 한번도 공주에 가 본적이 없었다. 항상 경북지역의 신라 유적지만 가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공주에 가기 전 백제에 대해서 더욱 알아보고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 오백 년 전 백제의 수도 한성은 고구려 장수왕의 3만 대군에 함락당하고 백제의 개로왕은 아차산에서 죽임을 당했다. 백제는 사직을 보존하고 고구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산세가 험해 지키기가 쉽고 공격하기 어려운 웅진에 서기 475년 고단한 몸을 누이게 된다. 그후 64년 동안 백제 웅진시대의 수도가 되었던 곳... 많은 유물과 유적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도시 공주... 공주는 무척 기대되고 설레이는 곳이다. 전반적 공주에 대해 살펴보면,
공주는 백제 5대왕 (문주, 삼근, 동성, 무령, 성왕) 64년간(475~538)의 왕도였으며 국립공원 계룡산을 비롯하여 4대 사찰 (마곡사, 갑사, 동학사, 신원사)이 있어 산자수명한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무령왕릉 등 백제의 유적과 천혜 관광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또한 통일신라 신문왕 6년(686) 웅천주의 수부(도독부)였고, 고려 태조 23년(940) 웅주를 공주로 개칭하였으며 고려 성종 2년(983) 공주에 牧을 설치할 정도로 충청지역에서 문화, 행정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선조 31년(1598) 충청도 감영을 충주에서 공주로 옮겼으며 이후 334년간 충청도의 수부로 기능하였다. 1910년~1932년까지 23년간 충청남도 도청소재지였으며 삼남지방에서 한양을 향하는 관문역할을 하였던 공주는 현재에 이르러서도 서울-호남지방과 대전-서해안방면을 연결하는 사통팔달의 육로가 방사형으로 뻗쳐 있어 교육, 문화, 관광, 교통의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공주는 청풍명월의 고장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이곳 사람들의 인심은 순후하면서도 천년관아의 고장답게 자긍심이 강하다고 한다. 그런 공주를 통해 백제의 역사에 한걸음 더 다가가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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