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의실패에서성공까지
- 최초 등록일
- 2009.12.15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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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례를 통해 알아본 창업실패에서 성공
목차
“뼈아픈 실패 ‘발품’으로 극복”
“품질도, 고객관리도 기본”
“한때 자살까지 생각”
본문내용
“뼈아픈 실패 ‘발품’으로 극복”
33세 유력 생명보험사의 광화문 부지점장을 등극하고, 연 7200만원을 버는 고액 연봉자. 실사출력 자영업체 서울그래픽의 오세동(50) 사장은 잘나가는 라이프플래너였다.
국내 최초 남자 라이프플래너 30인 중 한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소자본 창업을 서둘렀던 게 패착이었다. 뭐든지 서두르면 화를 입게 마련이다.
부지점장으로 상한가를 치던 1992년 말, 돌연 사표를 던진 그는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만류했지만 그의 황소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오 사장의 꿈은 “기업 CEO“. 더 늦기 전에 내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결과는 줄줄이 망했다고 한다.
제법 많은 금액을 투자해 창업한 비디오방은 경쟁업체가 속출하면서 폐업하고 말았다. 자영업에 도전한 지 불과 4년 만인 1996년 말, 오 사장의 가슴엔 실업자 딱지가 붙었다. 남은 것은 빚이요, 주름살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이듬해 외환위기까지 터졌다. 이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신세. 그는 자존심을 접고 핸들을 잡았다. 월 120만원에 변호사 운전사로 취업했다. “좌절할 틈도, 절망할 시간도 없었죠. 그저 애들 분유 값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하지만 단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대형 빌딩 지하엔 운전사 대기실이 있다. 운전사들은 그곳에서 때론 화투를 치고, 수다를 떤다. 일종의 소일거리다. 오 사장은 달랐다. 60㎡ 남짓한 지하 대기실에서 ‘백조의 꿈’을 키웠다. 창업 서적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퇴근하면 새 아이템을 찾기 위해 서울시내 곳곳을 훑었다. 그는 “운전사 시절 3시간 이상 자 본 기억이 없다”며 아픈 기억을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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