벡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 최초 등록일
- 2009.12.13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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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심성의 껏 작성하였습니다.
목차
Ⅰ.序
Ⅱ. 本論
Ⅲ. 結論
본문내용
Ⅰ.序
"형벌은 어떠한 경우에도 일개 시민에 대한 일인 또는 다수의 폭력 행위로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하여 형벌은 본질적으로 공개 되어야 하며 신속하고,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형벌은 주어진 상황하에서 최소한의 것이어야 하고 범죄에 비례해야하며 성문법에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한 벡카리아는 형법과 형사정책에 관한 서적을 살펴볼 때, 형사학 또는 범죄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는 고전주의 범죄학의 창시자로서 범죄와 형벌 이라는 불멸의 작품을 저술하였고, 이것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범죄학 저술 가운데 하나로서 남겨져 있다.
이 책에서 벡카리아는 교회로 부터 법을 해방 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다시 말해 종교로부터 벗어나 사회 계약론을 중심이론으로 삼아 그에 입각하여, 통치자에 의한 형벌은 부당한 것이며, 형벌은 마땅히 통치자에 의하여 법률로 엄밀히 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옛날부터 이어져온 종교형법과 르네상스에 이은 왕권신수설을 기반으로 한 절대 왕정시대의 잔혹하고 무자비한 형법이 전부였던 당시의 사회에 새로운 주장을 한 것만 보아도 벡카리아는 근대 형법학의 선구자로 불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Ⅱ. 本論
`범죄와 형벌`이 출간된 무렵, 즉 1750년 대 유럽 특히 이태리의 사상적 배경과 시대적 상황은 매우 복잡하였다. 교회 세력와 세속정부와의 마찰, 교권이론에 대한 합리주의 및 과학주의의 도전, 봉건적 경제제도가 가지는 모순에 대한 개혁의 주장 등이 이 무렵에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벡카리아의 고향인 밀라노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어 다른 지역 보다는 비교적 자유스러운 분위기였다. 밀라노의 계몽주의자들은 대부분이 정부의 공직을 맡았던 사람들로, 그들은 경제적 성장한 물질적 이득으로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재건을 꿈꾸며 전형적인 부르조아 사회를 건설 하려고 하였다. 계몽주의의 한사람인 볼테라라는 인물은 칼라스 사건과 1766년의 리바르 사건의 계몽적 판단 이후 벡카리아의 책에 큰 영향을 끼친다. 벡카리아의 주장이 각국의 형법 및 형벌 개혁운동으로 전환 될 수 있었던 일차적 계기는 군주와 귀족간의 권력투쟁에서 군주 측의 무기로 유용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벡카리아 범죄와 형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