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 분쟁을 통해 살펴 본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아일랜드 내의 집단들 간의 갈등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9.12.10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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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아일랜드 분쟁을 통해 살펴 본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아일랜드 내의 집단들 간의 갈등의 역사
목차
1. 아일랜드와 영국의 갈등의 역사 (1170년 ~ 20세기 초)
2. 아일랜드 역사 다시 보기
1) 북아일랜드의 민족 갈등에서 드러난 타자성
2) 아일랜드 역사에 대한 상반된 인식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여는 글
대서양의 동쪽 끝 브리튼 섬 옆에 위치한 아일랜드 섬은 유럽의 변두리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의 한반도와 흡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순결하며 가장 비참하고 비극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 그리고 강대국 곁에서 겪은 수난의 역사 등 두 나라 간에는 역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닮은 구석이 많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게 느끼는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이웃이라는 정서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도 존재했던 것일까 더블린 태생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만일 아일랜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잉글랜드는 아마도 아일랜드를 만들어 냈을 것이라고 말해 잉글랜드성의 형성에서 ‘타자의 역할’ 즉 아일랜드의 중요성을 말한 바 있다.
본 발제에서는 북아일랜드 분쟁으로 표출 된 영국과 아일랜드의 갈등의 역사에 관해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사람들이 서로에게 부과한 타자의 이미지와 아일랜드 역사에 관한 상반된 인식으로 표출된 민족 정체성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문
1. 아일랜드와 영국의 갈등의 역사 (1170년 ~ 20세기 초)
북아일랜드에서의 갈등은 영국이 왕권다툼을 벌이는 아일랜드의 지배층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자국의 병력을 상륙시킨 1170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이어 구교도의 정착지인 얼스터 지방에 병력을 상주시키고 더블린 지방에 부분적인 지배를 시작했다.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정복한지 약 4세기 뒤 잉글랜드 왕 헨리 8세는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 문제로 카톨릭에서 신교인 영국 국교회로 개종했다.
참고 자료
박지향『역사와 문학 속의-슬픈 아일랜드』, 새물결출판사, 2002
황익주 <북아일랜드의 민족갈등과 일상에서의 타자성 경험>,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2003
신혜수 <북아일랜드, 길고도 멀었던 대립과 갈등>, 역사비평사, pp370~379,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