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대전과 법전편찬
- 최초 등록일
- 2009.12.02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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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국대전과 법전편찬
목차
1. 머리말
2. 편찬배경과 목적
3. 편찬과정
4. 체제 및 성격
5. 의의와 한계점
6. 맺음말
≪ 참고 문헌 ≫
본문내용
1. 머리말
우리나라 최초의 성문법인 『經國大典』은 태조때 편찬된 『경제육전』과 『조선경국전』, 그리고 이후 편찬된 『경제육전』의 속집들을 바탕으로 세조, 예종, 성종대의 『경국대전』수정․반포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논의와 시간, 노력의 역사를 갖고 있다.『경국대전』은 엄밀히 말하면 成宗 16년(1485년) 乙巳에 편찬된 소위 『乙巳大典』으로 그 후 많은 법전편찬이 시행된 데에도 불구하고 高宗 31년(1894년) 갑오개혁에 이르기까지 일관해서 법전의 기본적인 원전으로서의 성격과 지립을 유지해 왔다. 『經濟六典』에 基盤을 두고 여러 왕들을 거쳐 수차례의 修撰 과정을 겪고 편찬 되다가, 조선 7대 世祖의 즉위 후 崔恒 등이 왕명을 받아 본격적으로 편찬이 시작 되었으며 약 30여년의 세월이 걸려 1485년(成宗 16年) 에 비로소 완성 되었다. 이리하여 『경국대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獨自的인 성격을 가지는 법전으로서 조선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대해 알아 볼 수 있는 귀중한 史料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경국대전』의 전반적인 내용과 의의, 한계점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 편찬배경과 목적
조선의 건국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살핀다면 고려사회가 지니고 있던 分權的 성격을 脫皮하여 집권성을 강화하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수조권 분급제의 범위를 축소하여 귀족 지배층의사적인 권한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중앙의 재정구조를 강화하는 문제이기도 했으며, 지방 사회에 대한 중앙의 지배를 확대하는 일이기도 했다. 즉, 고려사회의 사적인 형태의 지배력을 공적인 체계 속으로 收斂하고, 지주전호제를 확대하려는 의식, 신료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운영을 중시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조선 건국에 앞장섰던 개혁파 사대부들은 이러한 구상을 정치, 사회, 경제의 모든 영역 속에서 제도상으로 觀徹해가고자 하였으며, 무엇보다 법전을 통하여 具體化․永續化하고자 하였다. 이는 정도전의 『朝鮮經國典』, 『經濟文鑑』에서 제시되고 후일 조선 정부의 『경제육전』, 『경국대전』 편찬을 통하여 체계화 된 것 이다.
참고 자료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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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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