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 성균관 유생의 풍속
- 최초 등록일
- 2002.04.15
- 최종 저작일
- 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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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장의입반
2) 면책
3) 소행
4)궐희
5) 순당
6) 신임 대사성과의 상견례
7) 서립
8) 음주습속
9) 능행지영
10) 상읍례와 대상읍례
11) 통알
본문내용
조선시대에는 관학으로 중앙에 성균관 지방에 향교가 있었으며, 사립 학교로는 서원과 서당이 있었다. 민간 교육 기관인 서당이 많이 분포했던 것으로 보아 지방 곳곳까지 널리 교육이 행하여 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학부인 성균관의 선생은 관료들이 직접 맡았다. 성균관의 선생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인품과 학식이 뛰어나야 했으며, 또한 나이가 많아야 했다. 이는 윗사람을 존중하는 우리 관습으로 볼 때 당연한 것이었다. 성균관 교관은 유생들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생활 지도까지 담당했다.
향교에도 교관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육품 이상의 교수관과 칠품 이하의 훈도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밖에도 군, 현의 향교에서 생도의 교육을 담당하던 학장이 있었는데 이들은 그 지방의 출신들 가운데 선임되었으며 문과에 합격한 이들 가운데 사십 세에서 칠십 세인 사람으로 나이를 제한하였다. 조선시대 선생을 선발하는 기준은 엄격하였으며, 따라서 이들의 신분과 지위는 또한 보장되었다.
서원에는 강장과 훈장이 있어 강장이 강의를 진행하고 훈장은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담당하였다. 이들은 학식과 덕망이 있으며, 예에 밝은 자로 육십 세 이상의, 지역사회에서 명망 있는 자로 위촉되었다. 또한 다른 도로 옮기지 않는 한 이들은 평생동안 신분이 보장되었다.
서당의 조직은 간단하여 훈장이 유일한 교사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