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로의 역사인식
- 최초 등록일
- 2009.11.29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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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최승로의 역사인식에 대하여 작성한 발표문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고려전기(高麗前期)의 역사인식(歷史認識)
3. 최승로(崔承老)의 현실인식(現實認識)
4. 오조치적평(五祖治積評)
5. 시무책(時務策)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고려 태조 왕건은 지방호족출신의 문사(文士)와 신라계 귀부(歸附) 유학지식인을 통해서 고려의 국가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 신라계 유학지식인은 신라말에 모색했던 유교적 정치이념을 계승하여 고려 사회에 적용했고 성종(成宗)대에 활동했던 최승로(崔承老)도 신라계 유학지식인이 추구했던 유교적 정치이념을 체제 정비에 반영(反映)했다.
고려 초기 유교적 정치이념에 대한 연구는 최승로의 정치이념을 고찰(考察)하거나 신라계 세력의 형성과정을 살피는데 초점을 두고 비슷한 의견들의 연속이다. 홍승기교수의「崔承老의 儒家主義史學論」을 보거나, 김일환교수의 「최승로의 유교정치사상 연구」를 보더라도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유일하게 장영기교수의「崔承老의 佛敎觀-時務二十八條를 中心으로」이 논문에서 시무이십팔조(時務二十八條)를 불교적인 입장으로 바라보고 시무이십팔조를 비판한 논문이다. 이 논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논문들이 유교적인 시점으로 최승로를 평가한다고 볼 수 있다.
본 고 또한 고려 초기의 역사인식 속에서 오조치적평(五祖治積評)과 시무이십팔조를 바탕으로 최승로의 역사인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고려전기(高麗前期)의 역사인식(歷史認識)
고려전기는 고려의 건국부터 문벌귀족사회(門閥貴族社會)가 성립되기 시작하는 현종(玄宗)대까지를 말한다. 역사인식이란 그 시대의 역사적 과제와 사회운영원리로서 그 시대성과 당시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알아보는 것인데 고려전기의 역사인식은 새로운 왕조성립과 그 유지에 수반되는 정치적인 방향을 통해 전시대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게 당연하다. 새로운 왕조가 성립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왕조의 정통성을 위한 의식 확립이 필수조건이다. 고려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건국이후 민족의 재통일과 호족통합을 이룩하여 정치적 안정을 꾀하는데에 유교와 불교를 함께 중시하면서 신라계 유학지식인을 통해 국가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에 최치원의 유교적 정치이념을 계승하는 신라계 유학지식인들은 군왕(君王)의 자질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군왕 중심의 국가 질서를 확립하고자 했다.
또한, 고려왕조는 고구려의 계승왕조임을 자처하였으나 또한 신라를 삼국의 정통왕조로 보았다. 이것은 고구려와 신라 두 나라가 다 같이 고려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나타내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두 왕조가 미치는 영향력의 영역은 서로 판이(判異)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즉 고려의 대내문제에 관한 한 고구려의 영향이란 전무한 상태였던 데 반하여 신라의 영향력 거의 절대적으로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대외문제의 영역에 있어서는 신라의 계승자로서는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고려의 국가 이익을 크게 손상시킬 우려가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