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포에니 전쟁

등록일 2002.04.14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600원

목차

1.포에니 전쟁의 원인
2.제 1차 포에니 전쟁
3.제 2차 포에니 전쟁
4.제 3차 포에니 전쟁
5.포에니 전쟁의 주요 인물
6.포에니 전쟁의 주요 전투
7.포에니 전쟁의 결과
8.포에니 전쟁에 대한 나의 의견

본문내용

II.제 2차 포에니 전쟁
한니발전쟁이라고도 한다.
제1차 포에니 전쟁 뒤 몇 년이 지나자 로마는 코르시카와 사르데냐를 빼앗고 카르타고에게 전쟁 직후에 정했던 것보다 더 많은 전쟁 배상금을 내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결국 하밀카르 바르카와 아들 한니발, 사위 하스드루발이 이끄는 가운데 카르타고는 스페인에 새로운 기지를 얻어 로마와 다시 전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BC 219년 한니발은 이베리아 반도 동해안에 있던 사군툼(사군토)을 함락했다. 로마는 그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카르타고가 이를 거절했기 때문에 로마는 선전포고를 했다. 로마가 해상을 통제하고 있었기에 한니발은 육로로 스페인과 갈리아 지방을 지나 알프스 산맥을 넘어 BC 218년 보병 2만 명, 기병 6,000명, 코끼리 40여 마리를 이끌고 포 강가에 있는 평야에 이르렀다. 로마군은 그의 진격을 막으려고 애썼으나 힘이 달렸으므로 한니발은 북부 이탈리아를 확보하게 되었다. BC 217년 갈리아인들의 증원을 받아 한니발은 남쪽으로 나아갔는데, 로마를 바로 공격하는 대신 시민 반란을 부추기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2번째로 큰 도시 카푸아로 갔다. 그는 몇몇 전투에서 이겼으나 로마 시를 공격하는 것만은 참았다. 한니발의 가장 빛나는 전투였던 BC 216년 칸나의 전투에서는 2:1의 수적열세에서도 불구하고 유명한 포위섬멸전을 이용 5만의 로마군을 섬멸시켰다. 반도에 있는 로마의 동맹시는 로마에서 이반(離反)하지 않았다. 로마는 이 패배 뒤부터 기운을 되찾아 저항했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뛰어난 수비 전략으로 전투를 치르지 않고서도 카르타고군을 괴롭혔다. 카르타고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世) 및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와 동맹을 맺었으나, 로마는 이를 게릴라 전법으로 교묘히 저지하여 전선(戰線)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BC 207년 리구리아와 갈리아의 군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대규모 군사를 이끌게 된 하스드루발은 한니발이 넘은 알프스의 길을 따라와 북부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그뒤 반도를 내려가 한니발과 합류해 로마를 공격했다. 로마는 전쟁 때문에 지쳐 있었으나 하스드루발을 막기 위해 군대를 내보냈다. 남부 로마군 사령관 가이우스 네로는 북쪽으로 빠져나가 메타우로스 강둑에서 하스드루발을 물리쳤다. 한니발은 BC 203년까지 남부 이탈리아에서 진지를 지키다가 아프리카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리하여 15년 만에 처음으로 이탈리아에서 적이 물러갔다.
본토에서 전쟁이 오래 계속되는 동안, 로마의 주요식량원이었던 사르데냐와 시칠리아 섬에서도 전쟁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시라쿠사에서 일어난 내부반란을 이용해 카르타고는 시라쿠사에 다시 주둔했다(BC 215-210). 한편 로마군은 스페인에 있는 카르타고 요새에 계속 압력을 가했으며, 결국 BC 206년 로마 장군 푸블리우스 스키피오는 일리파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고 스페인에서 카르타고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스페인에서 이긴 뒤 스키피오는 카르타고 본토에 쳐들어가<<font color=aaaaff>..</font>

참고 자료

두산백과사전, 로마인 이야기 2권;한니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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