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무덤양식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9.11.24
- 최종 저작일
- 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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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고고학에의 초대
신라(新羅)의 무덤양식
왕릉은 말 그대로 왕의 무덤을 뜻한다. 신라의 많은 고분유적 중에서는 왕릉도 있지만 총(塚)이나 분(墳)의 형태의 무덤이 많다. 총은 주인공은 누구인지 알 지 못하지만 벽화 등 특징적인 것이 무덤에 있을 경우에 붙인 무덤이고, 분은 주인공도 모르고 특징도 없을 때 붙이는 무덤이다. 총과 분의 형태의 무덤은 주인공이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천마총, 금관총, 호우총 등의 무덤에서 왕 이외의 다른 신분자에게는 부장이 허용되지 않는 특수한 기물들의 출토가 확인되고 있어 신라 지도자의 무덤으로 추측되고 있다.
신라 무덤 양식의 변천은 조기의 토광묘, 전기의 적석목곽분, 후기의 횡혈식석실분으로 이어진다. 신라가 국가체제를 갖춘 후부터의 왕릉 및 여러 고분을 살펴보면 주로 지배층의 무덤으로 적석목곽분과 횡혈식석실분이 이용되었다. 따라서 신라 왕릉의 구조를 왕릉의 묘제로 주로 사용되었던 적석목곽분과 횡혈식석실분의 구조를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목차
◆ 적석목곽분 (돌무지덧널무덤)
◆ 횡혈식석실분 (굴식돌방무덤)
본문내용
왕릉은 말 그대로 왕의 무덤을 뜻한다. 신라의 많은 고분유적 중에서는 왕릉도 있지만 총(塚)이나 분(墳)의 형태의 무덤이 많다. 총은 주인공은 누구인지 알 지 못하지만 벽화 등 특징적인 것이 무덤에 있을 경우에 붙인 무덤이고, 분은 주인공도 모르고 특징도 없을 때 붙이는 무덤이다. 총과 분의 형태의 무덤은 주인공이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천마총, 금관총, 호우총 등의 무덤에서 왕 이외의 다른 신분자에게는 부장이 허용되지 않는 특수한 기물들의 출토가 확인되고 있어 신라 지도자의 무덤으로 추측되고 있다.
신라 무덤 양식의 변천은 조기의 토광묘, 전기의 적석목곽분, 후기의 횡혈식석실분으로 이어진다. 신라가 국가체제를 갖춘 후부터의 왕릉 및 여러 고분을 살펴보면 주로 지배층의 무덤으로 적석목곽분과 횡혈식석실분이 이용되었다. 따라서 신라 왕릉의 구조를 왕릉의 묘제로 주로 사용되었던 적석목곽분과 횡혈식석실분의 구조를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 적석목곽분 (돌무지덧널무덤)
(4세기 초~6세기 초) 신라 마립간과 귀족층의 무덤으로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묘형. 이른바 신라 적석목곽분이란 일반적으로 지하에 수혈식 토광을 파고 토광안에 상자형의 목곽을 설치하고 그 안에 피장자를 안치한 목관과 부장품을 놓고 목곽과 토광벽 사이, 그리고 그 위에 냇돌을 쌓아 적석부를 형성하고 다시 그 위에 봉토를 쌓고, 봉토의 기부 외주에 냇돌로 외호석을 쌓은 고분으로 고분이 축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목곽이 부식하게 되므로 적석이 목곽 내부로 함몰하게 되어 적석부 중앙에 봉토가 내려와 채워진 함몰부가 생기는 특징을 갖고 있는 고분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주에서 발굴되어 적석목곽분의 범주에 넣어 온 고분들 중에는 그러한 구조적 요건이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여러 가지 차이점들이 있다.
따라서 묘곽이 목곽이거나 곽벽은 나무가 아니더라도 덮개가 나무로 되어있고 그 위에 적석을 쌓아, 고분이 축조된 지 얼마 뒤에 적석이 함몰되어 발굴 당시 묘곽 위에 중심부가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