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천년 역사를 통해 면면히 전해진, 인류를 살리는 한민족의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역사과정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숱한 이민족의 침략과 수난에도 꺾이지 않고 한민족은 어떻게 불사조처럼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온갖 외침 속에서 우리 한민족이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낭가의 상무군. 상무정신`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낭가의 상무정신이 인류의 뿌리종교인 신교의 삼신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역설하였다. 낭郎은 본래 삼신상제를 수호하는 관직명이다. 낭가의 역사적 뿌리는 환웅천황께서 동방의 새 역사를 개창할때 환국에서 거느리고 온 문명개쳑단 3천 명이며 이들을 제세핵랑이라 불렀다. 환인, 환웅, 단군의 삼성조 시대에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와 관료, 제사장, 장교가 모두 미혼의 젊은이들인 낭가에서 나왔다. 그들은 삼신상제님께 올리는 제사를 주관하였으며 신교의 가르침을 받들어 신ㄱ의 성소인 소도의 경당에서 문문에 정진하였다. 이 낭가제도는 배달국의 제세했랑에서 시작되어 단군조선의 국자랑, 북부여의 천왕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절, 신라의 화랑, 고려의 선랑.국선.재가화상으로 이어졌다. 그 중에서 고구려의 조의선인과 신라의 화랑도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 낭가의 정신은 한민족의 역사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려 최후의 1인까지 대몽항쟁을 펼친 삼별초의 난에서 여실히 드러났으며, 조선시대 진유의 선비정신에까지 이어졌다. 뿐만아니라 갑오 동학혁명, 구한말의 항일 구국운동과 3.1운동, 광복군의 독립운동 등으로 민족의 위기 때마다 낭가의 정신은 유감없이 발휘되어 왔다. 이 같이 천년의 역사를 자랑 할수 있게 된 한민족의 힘의 근원이된 고구려의 조의선인과 신라의 화랑도에 대해서 알아보자.
목차
1) 신라의 화랑도-화랑도의 설립
-화랑도의 성격
-화랑도의 사상
-화랑도의 교육
;교육내용 및 방법
;교육목적
;현대교육
2) 고구려의 조의선인
-조의선인의 기원
-고구려의 선배제도
본문내용
천년 역사를 통해 면면히 전해진, 인류를 살리는 한민족의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역사과정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숱한 이민족의 침략과 수난에도 꺾이지 않고 한민족은 어떻게 불사조처럼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온갖 외침 속에서 우리 한민족이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낭가의 상무군. 상무정신`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낭가의 상무정신이 인류의 뿌리종교인 신교의 삼신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역설하였다. 낭郎은 본래 삼신상제를 수호하는 관직명이다. 낭가의 역사적 뿌리는 환웅천황께서 동방의 새 역사를 개창할때 환국에서 거느리고 온 문명개쳑단 3천 명이며 이들을 제세핵랑이라 불렀다. 환인, 환웅, 단군의 삼성조 시대에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와 관료, 제사장, 장교가 모두 미혼의 젊은이들인 낭가에서 나왔다. 그들은 삼신상제님께 올리는 제사를 주관하였으며 신교의 가르침을 받들어 신ㄱ의 성소인 소도의 경당에서 문문에 정진하였다. 이 낭가제도는 배달국의 제세했랑에서 시작되어 단군조선의 국자랑, 북부여의 천왕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절, 신라의 화랑, 고려의 선랑.국선.재가화상으로 이어졌다. 그 중에서 고구려의 조의선인과 신라의 화랑도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 낭가의 정신은 한민족의 역사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려 최후의 1인까지 대몽항쟁을 펼친 삼별초의 난에서 여실히 드러났으며, 조선시대 진유의 선비정신에까지 이어졌다. 뿐만아니라 갑오 동학혁명, 구한말의 항일 구국운동과 3.1운동, 광복군의 독립운동 등으로 민족의 위기 때마다 낭가의 정신은 유감없이 발휘되어 왔다. 이 같이 천년의 역사를 자랑 할수 있게 된 한민족의 힘의 근원이된 고구려의 조의선인과 신라의 화랑도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신라의 화랑도
1) 화랑도의 설립
화랑은 본래 상고시대의 신단인 솟대제단의 수호무사였던 부루교단에서 유래된 것으로 신라가 처한 정치적 지리적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민족의 고유한 신앙 밑에서 형성된 화랑은 종교적, 군사적 및 교육적 성격을 지닌 집단으로 진흥왕 때부터 조직화되고 형식화되었다. 삼국유사에서 화랑도의 설립을 보자면무리를 뽑아서 그들에게 효제와 충신을 가르쳐 나라를 다스리는 데 대요를 삼는다라고 하였
2. 고구려의 조의선인
1)조의선인의 기원
조의선인(早衣仙人)이란 `검은 빛깔의 조복(早<검은 비단 조, 검을 조, 사실은 白밑에 十또는 七임>服) 을 입은 선인`이란 뜻으로 선배 또는 선비라 불렀다. 선배는 고구려의 10월 제사에 모인 군중 앞에서 무예를 선보인 데서 비롯되었고 선인(先人 또는 仙人)은 선배의 이두(吏讀)식 표기이다. 사냥과 가무, 무예 등의 여러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을 선배라 불렀고 이들은 국가에서 급료를 받아 생활하면서 무예와 학문을 갈고 닦았다. 전시에는 이들이 자체부대를 조직하고 전장에 나가 정예군으로 활동했다. 선배는 머리를 박박 깍고 검은 옷을 입었으므로 전형적인 무사를 연상시킨다. 선배는 화랑보다도 훨씬 오래되었다. 조의선인의 눈부신 활약이 기록으로 보이는 것이 안시성 전투였다. 당태종의 당군(唐軍)은 요동의 여러 성들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많은 공성기구(攻城機具)를 사용해 안시성을 맹렬히 공격했지만 고구려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했다. 그래서 당태종은 60일 동안 50만을 동원하여 성을 내려다보고 공격하기 위해 성의 동남쪽에 높은 토산을 쌓게 했는데 토산이 무너져 안시성 성벽을 치는 바람에 성벽 일부가 붕괴되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다. 이때 고구려군 결사대가 일제히 돌격하여 당군을 물리치고 토산을 점령해 버리고 주변을 깎아 나무를 쌓아 불을 놓고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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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심리학]피아제와 비고츠키의 발달이론과 학자 비교 5페이지
- [답사기]청학동 삼성궁 4페이지
- 고구려 조의선인과 화랑도 비교 4페이지
- [사회과학]조의 선인 5페이지
- 고구려 조의선인과 신라 화랑도의 비교 6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