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맹자, 순자의 사상적 대표성과 함의
- 최초 등록일
- 2009.11.20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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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공자, 맹자, 순자의 사상을 <관계>, <질서>, <기능>의 관점에서 풀어 본 레포트입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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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안연이 인을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몸을 이기고 예에 돌아가는 것이 인을 행하는 것이니 하루 몸을 이겨서 예에 돌아가면 천하가 인에 돌아올 것이다. 인을 행함은 스스로 하는 것이니, 어찌 남에게서 말미암을 것이냐?” 안연이 말하기를 “청컨대 그 조목을 묻고자 하나이다.” 하니 공자 말씀하시길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공자에게 예란 仁의 실현방법이었다. 수기치인하고 극기복례를 통해 이상사회를 세우는 것이 바로 공자가 목표하는 바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덕치와 예치가 가장 좋은 정치방법이라 보았으며, 법률과 제도는 최소화하려 하였다. 법률을 세우고 그에 따라 형벌을 내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교화를 위한 것이며, 유가적 도덕관을 바로잡는 데 목적이 있을 따름이었다. 공자는 “예로써 가지런히 하려들면 백성들은 부끄러워할 뿐만 아니라 또 스스로 바로잡게 된”다고 했다.
이 부끄러움은 공자에게 있어 그리고 동양의 축심시대에 있어 매우 중요한 맥락이었다. 서양에선 원죄의식에 의해 신과 인간의 일대일의 연결이 중요시되었다면, 공자의 동양적 관점에서는 이 부끄러움이야 말로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통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이렇듯 세상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관계를 원활하게 하려는 노력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공자에게 있어 법과 제도, 즉 엄형중벌은 강제력을 가지기는 하나, 그 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제어할 수 없으며 어긋남은 반드시 ‘예’로써만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었다. 강압적인 지시나 명령에 의한 복종과 바로잡음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가지런히 하려고 애쓰는 것, 군자의 덕과 자세를 본받으려는 백성 스스로의 감화에 의한 교화를 꾀하였다. 이를테면 아버지의 곧은 자세를 아들이 본받아 따라하는 것처럼, 군자와 백성의 관계에서 상하의 엄격한 구별은 있으되, 덕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로는 열어둔 셈이다. 그 통로를 통한 교육을 통해 부족한 자들도 능히 예를 익힐 수 있는 것이다.
참고 자료
이극찬 『정치학』, 신영복,『강의-나의동양고전독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