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화성행차
- 최초 등록일
- 2009.11.19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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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조의 화성행차 그 행적을 따라서~
1. 융릉, 건릉 (현륭원 전배)
2. 팔 달 문
3. 화성 향교
4. 화성 행궁
5. 화홍문과 방화 수류정
6. 장 안 문
목차
없음
본문내용
1. 융릉, 건릉 (현륭원 전배 용주사
1) 소재지 (융릉, 건릉)
: (구)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안녕리
2) 특징
: 융릉에는 조선 왕조 중에서 당쟁의 희생으
로 비운에 간 조선 제22대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莊組 1735-1762)와 그의 비인 헌경왕
후(獻敬王后 1735-1815)가 묻힌 곳이다.
병풍석 윗부분 꽃봉오리 모양의 인석에 방
위 표시 문자가 새겨져 있다.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 이다.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을 두른 차이를 제외
하고는, 거의 융릉의 상설과 흡사하다.
1) 소재지 ( 용 주 사 )
: (구)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안녕리
2) 특징
: 원래 신라시대에 세워진 절이 있었는데
병자호란때 소실된 후 폐사된 것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
서 절을 다시 세워 원찰로 삼고 부모님의
위패를 모셨다.
①삼문과 줄행랑이다. 삼문은 궁궐이나 향교
및 서원과 왕릉 등에 쓰는 격 높은 문의 형
식인데 불교사원에 건립한 것은 아주 특별
한 예에 속한다.또한 삼문 좌우에 긴 행랑
이 또한
궁궐이나 사대부들의 집에서는 자주 보이
지만 사찰에서는 잘 쓰지 않는 건축 양식이
다. 이 용주사의 삼문과 줄행랑은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고 융릉에 온 귀빈이 드나들
때나 사도세자를 위한 재를 올릴 때 쓰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삼문은 재를 올릴 때
만 가운데 문을 열었을 것이고 그 수행원들
을 위해 행랑채를 길게 하여 줄행랑으로 만
들었을 것이다.
② 천보루에서 보이는 궁궐 건축과 사찰 건축
의 절묘한 만남이다. 주 불전인 대웅전으로
사람을 이끄는 건축 방법 중에서 가장 효과
적인 것이 누하진입樓下進入 방식이다. 대
웅전 앞에 마당을 조성하고 그 앞에 땅의
높낮이를 이용하여 마루집을 짓는다. 산에
있는 사찰의 경우 대개는 앞이 뒤보다는 낮
기 때문에 마루집을 짓기에 좋다.
이 마루집-천보루- 아래를 통과하여 대웅
전에 이르게 되는데 가운데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면 양쪽의 기둥과 천장, 그리고 땅의
표면으로 인해 액자가 형성된다.
이 액자 속에는 주 불전인 대웅전이 사진
을 찍은 듯이 쏙 들어오게 된다. 사방으로
흩어지려는 시각을 붙잡아 폐쇄시키고 가
운데에 집중하도록 하여 불전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이다. 용주사 이전의 사찰에서도
많이 쓰던 방법인데 용주사에서는 대웅전
지붕의 테두리까지 맞추어 액자를 구성하
였다. 천보루를 받치고 있는 돌기둥들은 궁
궐에서나 쓸 만큼 크다. 용주사를 세운지
80여 년 후에 경복궁에 경회루가 건립된다.
이를 보더라도 천보루 건축에 얼마나 심혈
을 기울였는지 알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