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사대부의 교양이념-위기지학
- 최초 등록일
- 2009.11.14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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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6세기의 사대부들이 자신의 교육의 목표로 삼은 위기지학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I. 내용 정리 및 서론
다음는 위 내용을 토론하여 토론주제를 설정하고 그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였다.
1. 위인지학과 위기지학의 구별
-위인지학만이 부정적이고 위기지학만이 긍정적인가?
2. 위기지학의 실천으로서의 향교와 서원의 역할
-현시점에서 대안학교는 학교가 기능하지 못하는 위기지학을 실천할 수 있는가?
3. 16세기 사대부에서 위기지학의 갖는 장점
-부정적인 면은 없는가?
4. 현시점에서 위기지학이 갖는 의미와 한계
II. 내용
본문내용
II. 내용
1.사림의 등장 배경과 ‘위기지학’
1)위인지학과 `위기지학`의 구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옛날에 공부하던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공부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을 위해 공부한다.”
즉 공자는 공부하는 사람의 관심이 어디에 있냐를 가지고 학자를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음을 지적했던 것인데, 주희는 다음과 같이 정이의 말을 이끌여 들였다.
“정자가 말씀하셨다. - 위기란 ‘자아의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다. 위인이란 ‘남들로부터의 인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자가 말씀하셨다 - 옛날의 학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공부했으나, 결국은 세상을 개선시키는 일에 이바지했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남들을 위해서 공부하지만, 그 귀결은 ‘자기상실’일 뿐이다.
결국 위기지학과 위인지학의 차이는 공부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있다기 보다 공부를 하는 사람의 일차적 관심과 태도가 자신을 ‘내면적으로 성숙시키는 데’ 있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데’ 있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2)시대적 요구상황과 정치적 배경
시대적 요구상황으로는 조선초부터 교육과 학문이 과거에 종속되어 오로지 급제와 출사의 수단으로만 추구되는 풍토하에서 『경국대전』으로 확정된 조선왕조의 과거 시험이 사실상 경학보다 문학적 소양을 두둔하는 쪽으로 정착되었다. 주자학이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경학공부가 과거라는 ‘명리’를 다투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내재적 가치’를 갖고 있음을 보여 주는 길뿐이었다. 달리 말해 경전이 ‘그 자체로서 훌륭한 삶’이 어떤 것인가를 말로서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흠모할 만한 구체적인 인격적 모범’을 담고 있는 책임을 보여 주는 길뿐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학의 언어로 말하자면 ‘위인지학’으로부터 ‘`위기지학`’으로의 방향 전환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대부들의 현실적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사대부는 치자층의 일원으로서 출사를 통한 정치 참여 이외에 학문과 교육에 종사하면서도 자신의 사회적 존재 의의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런 학자요 교육자로서의 삶의 방식이 관료요 정치가로서의 삶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성리학적인 유교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윤리사건이 조선시대 지배층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이른 바 강상사건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가장 큰 죄였다. 신분질서가 무너지던 조선 후기에 특히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여 부모나 남편을 살해한 자, 노비로서 주인을 죽인 자, 관노(官奴)로서 관서의 장을 죽인 자는 가장 큰 죄로 취급해 사형시켰다.
의 발생이었다. 중종 10년 2월 전라도 낙안군에서 아들이 친모와 골륙을 살해한 강상사건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사대부층이 타락한 사풍을 쇄신하여 솔선수범하지 못함으로써 서민층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있다는 증좌라고 보았다.
정치적으로는 훈고대신들이 장악한 정치에 입문한 사림들이 기존의 세력과는 차별화를 두고 새로운 세력으로 발돋음 하기위한 정치적 이념과 그들이 추구한 성리학적 이념으로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했다. 몇 번의 사화에도 불구하고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