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영토확장과 인도항로 발견
- 최초 등록일
- 2009.11.04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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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아프리카 영토 확장과 인도 항로 발견의 역사
목차
●북아프리카의 영토 확장
●서아프리카 해안의 개척
●인도항로
본문내용
●북아프리카의 영토 확장
15c 포르투갈은 산업 발전과 종교적 혁신, 과학의 진보를 바탕으로 어느 국가들보다도 먼저 해외 영토 확장 계획을 착수한다. 동 주앙 1세(1385~1433)의 통치기에 세우타 정복 계획이 세워지고 둘째 아들인 항해왕자 동 엔리케의 지휘 하에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세우타를 정복하게 된다.(1415)
세우타는 아프리카 북쪽 끝,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스페인과 마주한 항구도시로 세우타의 정복은 포르투갈의 북아프리카 영토 확장의 첫 걸음이 되었다. 세우타는 지중해와 대서양 사이를 항해하는 선박들의 기항지였기에 오랜 기간 동안 사막을 통하여 모로코(아프리카 북쪽 끝)에서 기네아(아프리카 중서부)를 연결하는 교역로의 종점이 되었고, 엔리케 왕자는 향료를 운송하는 지중해 동부 연안 사람들로부터 귀중한 정보들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세우타는 당시 이슬람 세력의 전진 기지였고, 포르투갈 해안 지대를 공격하고 포르투갈의 상선들을 괴롭히던 해적들이 그 곳에서 출항했다. 따라서 세우타의 정복으로 인해 포르투갈은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는 크리스트교 국가들의 선박을 보호할 수 있었고, 이베리아 반도의 방어와 포르투갈 안전에 중요한 요새를 확보하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세우타와 기네아>
당시 세우타는 교역의 중심지였던 지중해와 새로운 교역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대서양을 잇는 곳이었기에 많은 나라들이 눈독을 들인 도시일 것 같다. 그런 도시를 정복한 것 자체만으로도 포르투갈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고, 동 엔리케 왕자는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세우타 정복에 성공하여 많은 이점이 생기게 되자, 포르투갈 내에서는 영토 확장주의자들의 세력이 개가하게 된다. 이들은 많은 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탕헤르 원정대를 조직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