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 시조, 이방원 시조, 정몽주의 어머니 시조
- 최초 등록일
- 2009.11.03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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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여러 방면에서 자료를 구해봤습니다.
2장분량이지만.. 내용은 확실하답니다.
발표를 해도..교수님이 정말 좋아하실껍니다.
A+ 받기 참 쉽죠잉~ㅎ 교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보세요^^
목차
없음
본문내용
* 5월 22일 위화도 회군을 거치고 6월 3일 도성을 공격하여 장악한 이성계는 얼마 후 우왕, 창왕을 폐하고 문하시중 조민수마저 그의 고향마을로 쫗아냈다.(조민수는 요동정벌 당시 좌군 도통사로 임명되어 우군 도통사 이성계와 같이 명나라를 공격하러 나선 사람이다. 위화도 회군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조민수가 말리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또한 자신의 회군을 임금을 쫗아내자는 야심에서 비롯되지 않았음을 보이기 위해 조민수를 자기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몇년 후 김종연의 무리가 모반하려던 사건이 발각되고 이성계는 문하 시중의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고, 정몽주는 수문하 시중이 되었다. 1392년 3월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러자 왕덕이 공양왕과 정몽주에게 이성계의 세력을 뽑아버리기를 권유하였고, 정도전과 조준이 귀양을 가고 윤소종 등 이성계를 따르던 자들이 벼슬을 빼았기는 일이 생겼다. 이렇게 되자 이방원은 이성계와 함께 개경으로 돌아갔다. 곧, 정몽주가 문병을 왔다. 얼마 후 정몽주가 방에서 나오자 이방원은 정몽주를 불렀다.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내쫓긴 사람들을 구제해 달라고 하였으나 왕명이니 어쩔 수 없다며 거절당했다. 그러자 이방원은 하여가를 불렀고 정몽주는 이에 답하여 단심가를 불렀다.
그 후는 알다시피 이방원이 조영규에게 정몽주를 제거하라고 명령하였고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살해당했다. 그리고 1392년 7월 12일 공양왕이 왕위에서 물러남으로서 고려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그리고 닷새후인 7월 17일 이성계가 왕위에 올랐다.
* 하여가에는 `이미 타락할대로 타락한 고려 왕조를 그만 포기하고, 자신(이방원)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칡덩굴처럼 얽히어져 함께 조선왕조를 세우자` 라는 뜻입니다. 정몽주를 자신의 편에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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