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구려의 문화변동에 따른 고분벽화의 변천과정
목차
1. 머리말
2.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변동
3. 고구려 고분 벽화의 출현
4. 고구려 고분 벽화의 전개과정
1) 전기의 고분벽화
2) 중기의 고분벽화
3) 후기의 고분벽화
5.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1.머리말
700여년간의 역사 속에서 고구려는 거대 고분과 더불어 다양한 내용의 벽화분을 축조하였다. 고구려는 본래의 전통적 문화 기반 위에 외래의 다양한 문화를 습합함으로서 독자성이 뛰어난 민족의 기질을 보였으며 이러한 문화의 독창성은 후대에 신라에 까지 영향을 미쳐 중국 문화권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서 발달해 나가게 된다. 중국과 북한 그리고 남한 일부 지역에서 발견되는 고구려 고분에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 뿐 아니라 고구려의 성장과 발전의 모습을 엿 볼 수 있게 된다.
특히 5C 장수왕(413~491)때 평양천도 이후 고구려의 문화는 이전에 비해 상당한 변화를 보이는데, 이러한 변화의 양상은 고분벽화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6C에 이르러 평양천도이후 나타나는 정치적, 사회적 변동으로 인해 평양지방의 고분벽화의 내용과 집안지역 고분의 벽화내용에도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고분벽화의 변천된 흐름은 당시의 시대상과 풍속, 정치적 요소까지 고려되어 표현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4C에서 출발하여 5C, 6C에 이른 고구려 고분벽화는 고구려의 문화적 변동의 구체적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보고서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시기를 세 시기로 구분하여 전기를 약350~약450년, 중기를 약450~약550년, 후기를 약550~약668년의 편년으로 구분하여 그 전개양상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2.고구려의 역사와 변동
고구려는 서기 전후 무렵에 건국하여 668년에 멸망한 고대국가이다. ‘高句麗’라는 나라이름의 연원을 보면 ‘句麗’는 성, 읍락 등을 의미하는 고구려 말인 ‘구루(溝婁)’와 통하고, ‘高’는 크다는 뜻의 한자어로 볼 수 있는데, 이를 합하여 ‘큰 고을’ 또는 ‘큰 성’이란 뜻에서 유래 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가 처음 일어난 곳은 압록강 중류의 독로강 및 혼강 일대로, 첫 수도는 졸본이었으며, 고구려를 세운 족속은 압록강 중류에 터전을 하고 있던 맥(貊)족 이었는데, 고구려를 세운 맥족은 기원전 5~4세기경부터 압록강 중류 지역에서 거주하였다. 이들은 적석총(積石冢돌무지 무덤=돌각담무덤=돌무덤)이라는 독특한 무덤을 만들어 주위의 다른 족속과 문화적으로 구분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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