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직 <혈의 누>
- 최초 등록일
- 2009.10.31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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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줄거리, 작가 소개, 작품 해설, 소설의 시대적 배경, 교과서 학습활동 및 해설
목차
-이인직
-「혈의 누」줄거리
-등장 인물
-구성 :
-요약
-「혈의 누」의 문학사적 의의
- 신소설의 주제와 시대 의식
-「혈의 누」의 한계
-「혈의 누」 의 하편
-일본이 인도하는 문명 개화의 길
-「혈의 누」의 신소설적 특징
-탐구활동
본문내용
-이인직
이인직(李人稙, 1862 ~ 1916)은 1862년에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다. 1900년 38세의 늦은 나이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의 정치 학교를 졸업한 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의 통역관으로 귀국했으며, 그 뒤 <국민신보>와 <만세보>의 주필을 지냈다.
이인직이 작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만세보>에 「혈의 누」를 연재하면서부터이다.
또 190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 극장인 원각사를 세워 자신의 신소설 「은세계」를 연극으로 상연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신연극(新演劇)이다. 같은 해에 신소설 「귀(鬼)의 성(聲)」과 「치악산」을 발표했으며, 이어서 「빈선랑(貧鮮郞)의 일미인(日美人)」 「모란봉」을 내놓음으로써 우리나라 제일의 신소설 작가이자 신연극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고대 소설에서 근대 소설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한 것이 신소설인 점을 생각할 때, 우리나라 문학사와 연극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친일 지식인으로,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에는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이완용의 비서로 일하면서 일본의 조선 강점에 협력했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그는 경학원(經學院 : 일본이 조선 왕조의 정신적인 권위를 나타내는 성균관을 격하하여 설치한 기관)의 사성을 지냈으며, 1912년 일본의 요시히토 천황이 즉위할 때는 이를 찬양하는 헌송문을 지어 바치기도 했다.
`혈의 누`라는 작품 제목에서도 그의 친일 경향은 잘 나타난다. 우리말의 어법으로는 `혈루(血淚)` 또는 `피눈물`이 되어야 하지만, 그는 `혈의 누(血の淚)`라는 일본식 제목을 단 것이다.
1916년 그는 일본의 종교인 천리교의 예법에 따른 장례를 치르고 세상을 떠났다.
-「혈의 누」줄거리
이 작품은 김관일과 그의 부인 최씨, 딸 옥련, 그리고 미국 유학생 구완서 등의 인물을 등장시켜 그들의 삶의 곡절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발단은 청일전쟁(淸日戰爭)의 회오리 바람이 막 지나가고 피비린내가 만연한 평양 어느 곳에서 삼십 세 가량의 여인이 옷도 풀어 헤친 채 허둥거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여인은 전쟁 전 평양에서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김관일의 부인으로, 부인은 거의 탈진한 상태로 모란봉 산비탈의 즐비한 시체 사이에서 헤어진 남편 김관일과 외동딸 옥련이를 찾으며 허둥대다가 일본 헌병에게 끌려간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