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유사 속의 검결
- 최초 등록일
- 2009.10.18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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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용담유사 속의 검결
목차
Ⅰ. 序 論
Ⅱ. 「검결(劍訣)」 작품 개요와 창작 배경
Ⅲ. 「검결(劍訣)」, 그 내용
Ⅳ. 「검결(劍訣)」이 지향하는 세계
Ⅴ. 結論
본문내용
Ⅰ. 序 論
『용담유사』는 동학의 교주 최제우가 1860~1863년에 걸쳐 한글로 지은 포교가사(布敎歌辭)이다. 1860년(철종 11)에 지은 「용담가」, 「안심가(安心歌)」, 「교훈가(敎訓歌」를 비롯, 1861년에 지은 「도수사(道修詞)」, 「몽중노소문답가(夢中老少問答歌)」, 1862년에 지은 「권학가(勸學歌)」, 1863년에 지은 「도덕가(道德歌)」, 「흥비가(興比歌)」 등 9편의 가사를 모아서 엮은 책이다. 『수운행록(水雲行錄)』에 의하면, 이 『용담유사』는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처사가(處士歌)」를 포함하여 모두 10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제 2세 교주인 최시형(崔時亨)이 1881년(고종 18) 6월 충북 단양군 남면 천동(泉洞) 여규덕(呂圭德)의 집에서 간행케 한 것이 있고(1책, 필사본), 그 뒤 1893년과 1922년에 각각 목판본으로 재 간행된 바 있다. 이 때 「검결(劒訣)」은 정치적 이유로 인하여 함께 간행되지 못 하였다.
서양세력의 동점(東漸)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이에 맞서기 위한 정신자세로서 동학을 내세운다는 뜻이 주가 되어 있다. 일반 민중과 부녀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한글 가사체(歌辭體)를 빌려 동학의 사상을 펼쳤는데, 형식이나 문체는 비록 고전 가사와 같지만 개화기의 문체를 처음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개화기 가사의 효시가 된다.
본고에서는 『용담유사』 속에서 가장 나중에 지어진 「검결(劍訣)」에 대하여 다루려 한다.
Ⅱ. 「검결(劍訣)」 작품 개요와 창작 배경
1. 개요
교도들이 몸을 닦고 주문을 외우고 약을 먹으면서 칼노래를 부르며 칼춤을 추는 동학의 종교의식이자 수련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최제우가 득도한 이듬해인 1861년(철종 12) 박해를 피해 경주를 떠나 서공서(徐公瑞)의 주선으로 남원성 밖 교룡산성(蛟龍山城) 산골짜기에 있는 선국사(善國寺) 은적암(隱寂菴)에서 여덟 달 동안 피신하여 수양하는 사이 칼노래를 짓고 칼춤을 추었다고 한다. 노래가사는 『용담유사』에 한동안 싣지 않았고, 관변문서나 뒷날 필사본에 검가(劒歌)·검무(劒舞) 또는 시검가(侍劒歌)·격흥가라는 이름으로 전한다. 관변기록을 보면, 검무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돼지를 잡고 과일을 마련해서 깨끗하고 조용한 산에 들어가 단을 모으고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가운데 행했다고 한다. 주문을 외어 강신(降神)을 청해 황홀경에 들면, 나무칼을 잡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칼춤을 추
참고 자료
황재군, 「한국 근대 시가문학사(상)」, 집문당, 1992
윤석산, 「동학가사 <검결>연구」, 한국언어문화학회(구 한양어문학회)-유병석 교수 추모 특집, 200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황선희, 「한국근대사상과 민족운동1」, 혜안,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