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어중문] 도연명과 사령운

등록일 2002.04.04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도연명과 사령운에 대한 극히 간단명료한 분석

목차

1.도연명과 전원시
2.사령운과 산수시
3.도연명작품 분석
- 음주
- 귀원전거
4.사령운작품 분석
- 유남정

본문내용

Ⅰ. 도연명(陶淵明)과 전원시(田園詩)
도잠(陶潛 : 365∼427)은 자는 연명(淵明) 또는 원량(元亮)이며 이름은 잠(潛).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오류(五柳)선생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강서성(江西省) 심양(陽 : 현재 九江縣) 시상(柴桑)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증조부는 서진(西晋)의 명장 도간(陶侃)이며, 외조부는 당시의 명사 맹가(孟嘉)였다고 전한다. 이와 같은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생활이 그렇게 풍족하지 못한 소지주 정도의 가정에서 자랐으며,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제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사임하였다. 그 후 군벌항쟁의 세파에 밀리면서 생활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진군참군(鎭軍參軍)·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항상 전원생활에 대한 사모의 정을 달래지 못한 그는 41세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팽택현(彭澤縣)의 현령(縣令)을 사임한 후 재차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의 퇴관성명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사전(史傳)에는 상관의 순시 때에 출영을 거절하고, "나는 5말의 쌀(五斗米)을 위하여 향리의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라고 개탄하였다고 적혀 있다. 향리의 전원에 퇴거하여 스스로 괭이를 들고 농경생활을 영위하여 가난과 병의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62세에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그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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