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 답사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09.10.10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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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북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 답사 보고서로서 사진도 함께 있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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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미륵사지로 답사를 나서니 날씨가 무척 흐렸다. 일기예보에는 저녁부터 상당한 비가 내린다고 하니 더욱 조바심이 나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집을 나섰다. 미륵산은 익산 시내에서 차로 30여분 거리에 있는 산으로 그리 멀지 않다. 내가 미륵산을 처음으로 방문한 것을 고등학교 시절인 1980년대였다. 그 때는 미륵사지가 거의 발굴이 되지 않아서 터는 빈들처럼 황량했고, 석탑은 반파된 채 그대로 방치되어있었으며 본격적인 발굴은 90년대에 이르러서부터였다.
미륵산 및 미륵사지 입구
미륵산(일명 용화산)은 해발 430미터로 최고봉인 장군봉과 동쪽 계곡을 둘러 산성이 있다. 미륵산성은 석성으로 기준성 또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된 성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고조선 왕 준이 금마 땅에 내려와 마한을 개국하고 성을 쌓았다 하여 기준성이라 부른다. 성내에서는 무문토기편과 청동기, 백제토기편 및 기와편이 출토되고 있으며, 1990년 원광대학교 마한, 백제문화 연구소의 동문지 발굴 조사결과 백제시대에 축성되어 조선 초기까지 4차에 걸쳐 개축된 사실이 확인 되었다. 성의 길이는 1,822미터로서 산 경사면에 쌓았는데 성벽의 높이는 4~5미터 이며, 폭은 6미터 정도이다. 성내에는 건물지, 장대지, 우물터가 남아 있으며 현재 동문지, 남문지와 10개의 치가 남아있고 동문지와 주변 성벽을 정비하고 있다.
흐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미륵사지에는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특히 인근 대학 국문학과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돋보였다. 현재 이곳은 입장료와 관람료 모두 무료로 되어있다.
미륵사지는 미륵산의 남쪽 기슭과 금마면 탑성마을 일대 5만평에 자리 잡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30대 무왕이 왕비와 함께 용화산에 있는 사자사로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 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미륵사를 창건하였다. 또 지명법사의 도움으로 산을 허물어 못을 메우고 전(금당), 탑, 낭무(회랑)를 세 곳에 마련한 가람을 조영하였는데 신라 진평왕이 백공을 보내어 도와주었다” 고 기록되어 있으며 발굴조사에 의해서 미륵사가 3원 1가람이며 산흙으로 메운 못에 자리하고 있는점 등이 밝혀져 삼국유사의 기록이 실증적임을 알 수 있다.
미륵사는 창건 당시 건축, 공예 등 백제의 문화역량이 최대한 발휘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라 등 삼국의 기술이 결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륵사 창건은 이곳 금마에 가람을 조영하여 마한 세력을 아우르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을 것이나 황룡사로 대표되는 신라 화엄 신앙에 대비되는 백제 미륵신앙에 바탕한 것이다.
전시관에 설치된 미륵사 모형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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