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타이에 대한 기원과 스키타이-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소개관련 문서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09.09.28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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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상 최초로 기록되어 전해지는 스키타이에 대한 보고서. 스키타이의 기원-국가모습-스키타이가 최초로 등장하는 스키타이-페르시아전쟁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져있다.
목차
1. 스키타이 이전의 세계
2. 스키타이의 기원
3. 스키타이-페르시아 전쟁
(1) 전쟁의 발단
(2) 전쟁의 전개
(3) 전쟁의 결과
4. 스키타이 국가의 모습
5. 스키타이의 문화와 유물
(1) 동물양식
(2) 파지리크: 초원에 펼쳐진 동물양식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스키타이 이전의 세계 고마츠 히사오 외,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소나무 2005
[그림1]중앙유라시아의 주요유적 (출처:중앙유라시아의 역사, p.31)
기원전 10~9세기경에는 초원이 더욱 건조해지고 초원지대에 사는 이들의 농경-목축생활이 양극화된다. 물을 확보할 수 있는 남쪽의 오아시스에서는 순수한 정주 농경민이, 북방 초원에서는 이동목축을 하는 전업 유목민이 그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기원전 7세기 기마 유목민인 스키타이가 등장한다. 이미 그 이전인 기원전 9~8세기에 기마유목문화가 나타났는데 이 시기를 선 스키타이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먼저 흑해 북부연안을 중심으로 하는 체르노고로프카형 문화, 북카프카스를 중심으로 하는 ‘노보체르카스크형 문화’가 있다. 이 당시의 유물 중 노보체르카스크형 유물은 북카프카스에 초기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 문양 유물과 함께 출토된 적도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두 문화는 상당한 밀접성이 있는 기마 유목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스키타이 이전부터 사슴과 청동 솥이 존재하였던 사실도 중요하게 바라볼만 하다. 사슴돌에 새겨진 사슴의 존재와 의식에 사용되었던 솥의 존재는 중국 북방에서 전래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미 선 스키타이시대부터 초원지대에서의 동서간교류는 활성화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고, 솥을 통하여 정신문화도 유라시아 초원지대가 하나로 통합되기 시작했음을 볼 수 있다.
[그림 2] 기원후1~2세기 청동솥 (출처: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p.54)
2. 스키타이의 기원
우리가 현재 알아볼 수 있는 스키타이에 대한 자료는 주로 유물과 기록물인데 그 중 스키타이에 대한 기록물은 헤로도토스(기원전 484년경~ 420년경)의 ‘역사’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참고 자료
1. 단행본
김종래, [유목민 이야기], 서울 : 자우출판, 2002
권영길, [실크로드 미술], 서울 : 열화당, 1997
고마츠 히사오 외,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서울 : 소나무, 2005
니콜라 디코스모, [오랑캐의 탄생-중국의 만들어낸 변방의 역사], 서울 : 황금가지, 2005
르네 그루쎄,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서울 : 사계절, 1998
스기야마 마사아키, [유목민이 본 세계사], 서울 : 학민사, 1999
2. 신문 및 잡지
조선일보, 2007. 06.04 [19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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