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의 비교
- 최초 등록일
- 2002.03.24
- 최종 저작일
- 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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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의 비교
본문내용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동안 많은 지식인들은 독립을 위해 노력하거나 친일로 돌아선다.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신채호의 글과 친일로 돌아섰던 이광수의 글을 서로 비교해보고자 한다.
먼저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은 1923년 1월 의열단의 요청으로 집필한 독립선언서로 의열단 선언이라고도 한다. 1920년을 전후한 시기에 신채호는 이회영, 유자명 등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무정부주의자들과 함께 러시아 혁명, 파리강화회의 등 국제정세에 대한 소식, 상해 임시정부와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의 활동, 조선 독립운둥 방략에 대한 의견등을 교환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신채호는 새로운 조선의 건설을 자유연합의 조직원리에 따라 세워져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무정부주의 혁명관이 나타나 있는 문서를 집필했다. 전문 6400여자에 달하는 선언의 내용은 일제의 강도정치를 고발하고 항일독립운둥의 방법으로 무장투쟁을 강조한 반면 문화운동, 독립외교론을 철저히 비판했다. 그리고 혁명은 민중혁명이라 규정하여 민족독립운동을 민중해방운동과 동일시 했으며 , 혁명의 방법으로서 민중봉기를 호소했다. 한편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해 이족 통치와 특권계급, 경제 약탈제도, 사회의 불평등, 노예적 문화·사상을 모두 파괴할 것을 주장했다. 폭력을 혁명의 유일한 무기라 선언하고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생활에 불합리한 일제의 제도를 개조해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 것을 지향했다. 조선혁명선의 좀더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