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감영지
- 최초 등록일
- 2009.07.16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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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라감영지를 조사하고 활용방안을 모색해본 리포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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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전라감영지를 선택한 이유
감영지에 대한 소개
전라감영지에 대한 소개
전라감영지가 세워진 당시의 전주의 사회적 위치
Ⅱ. 본론
전라감영지의 현황
전주시가 마련한 활용 방법
전라감영지의 활용 방안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1. 전라 감영지를 선택한 이유
조선왕조의 지방행정체제는 건국 초부터, 고종 32년인 1895년 13도체제로 바뀌기 전까지 8도체제를 시행하였다.
이를 위해서 전국 340개미만의 읍에 외관을 파견하여 통치하였는데 특히 감영은 외관 중 최상위 관품이 파견되었던 지방행정 중 최상위 관아이다.
특히 예제, 즉 여러 가지 일의 법식을 중시하였다고 하는 조선왕조를 이해하는데 있어 조선왕조 지방관아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최상급 지방관아인 감영은 우선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타도의 경우에는 이미 복원이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으며 강원감영같은 경우는 강원감영제를 통해서 이미 감영이라는 존재를 연구하고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은 전라도에서 전국에 8개뿐인 감영지라는, 그것도 지금의 전라북도, 전라남도, 그리고 제주도 전체를 통괄하는 그런 엄청난 유적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청이 있는 장소라는 이유로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즈음 전라감영은 도청청사가 이전함으로 인해 부각되고, 그 쓰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에 있다.
관아에 대한 연구라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민중을 대변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동학농민운동의 중요기구 집강소가 바로 이 전라감영에 설치되었다는 것은 이 전라감영을 복원함으로써 이곳이 곧 조선시대의 지방행정시스템과 함께 민중의 삶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감영지를 잘 활용한다면, 지금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전라도의, 전주의 문화위상도를 올리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이 전라감영지를 잘 복원하고 활용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에게 감영이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또 전주시민, 나아가서는 전라도의 자긍심을 심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전라감영지를 선택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