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광기 7 백석선생 황초평 왕원 백산보 마명생 이팔백 이아
- 최초 등록일
- 2009.07.01
- 최종 저작일
- 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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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태평광기 7 백석선생 황초평 왕원 백산보 마명생 이팔백 이아
500권. 송(宋)나라 태종(太宗)의 칙명으로 977년에 편집되었다. 종교관계의 이야기와 정통역사에 실리지 않은 기록 및 소설류를 모은 것으로, 당시의 유명한 학자 이방(李昉)을 필두로 하여 12명의 학자와 문인이 편집에 종사하였다. 475종의 고서에서 골라낸 이야기를 신선·여선(女仙)·도술·방사(方士) 등의 내용별로 92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송나라 이전 시대의 소설 중에서 원형 그대로 완전하게 전해지는 것은 하나도 없으므로, 그 일부를 보존하는 역할을 다한 것으로서 귀중한 책이다. 간본(刊本)으로는 명대(明代)의 담개(談愷) 간행본, 허자창(許自昌) 간행본, 청대(淸代)의 황성(黃晟) 간행본 등이 있다
목차
백석선생
황초평
왕원
백산보
본문내용
白石先生者,中黃丈人弟子也.
백석선생은 중황장인의 제자이다.
至彭祖時,已二千歲餘矣。
팽조시대에 이르러서 이미 2천여세 정도였다.
不肯修升天之道,但取不死而已,不失人間之樂。
하늘에 오르는 도를 닦길 긍정하지 않고 단지 죽지 않음을 취할 뿐이니 인간의 쾌락을 잃지 않았다.
其所據行者,正以交接之道爲主,而金液之藥爲上也。
행동의 근거는 바로 남녀가 교접하는 방도를 위주로 하며 금액의 약을 최상으로 여겼다.
初以居貧,不能得藥,乃養羊牧豬,十數年間,約衣節用,置貨萬金,乃大買藥服之。
초기에 가난하게 살아서 약을 얻지 못하며 양을 기르며 돼지를 목축하길 십수년간 하여 옷과 일용품을 절약하여 만금을 사서 크게 약을 장사하여 복용하였다.
常煮白石爲糧,因就白石山居,時人故號曰白石先生。
항상 백석을 달여 식량으로 삼고 백석산에 거처하니 이 때 사람들이 그래서 호를 백석선생이라고 하였다.
亦食脯飲酒,亦食穀食。
또한 백석선생은 포를 먹고 술을 마시며 또한 곡식을 먹었다.
日行三四百里,視之色如四十許人。
하루에 3,4백리를 가고 보면 안색이 40여세와 같았다.
性好朝拜事神,好讀幽經及太素傳。
성품은 잘 여러 신을 섬겨 절하며 유경과 태소전을 잘 읽었다.
彭祖問之曰:
팽조가 그에게 물었다.
“何不服升天之藥?”
어찌 하늘에 오르는 약을 복용치 않으십니까?
答曰:“天上復能樂比人間乎?但莫使老死耳。天上多至尊,相奉事,更苦於人間。”
대답하길 하늘 위는 다시 인간과 같은 즐거움이 있습니까? 단지 늙고 죽게 하지 않습니다. 하늘 위에 지존이 많으니 도와 봉사해야 하니 더 인간보다 고통스럽습니다.
故時人呼白石先生爲隱遁仙人,以其不汲汲於升天爲仙官,亦猶不求聞達者也。
그래서 시대 사람이 백석선생을 은둔선인이라고 하며 하늘에 올라서 선관에 됨을 급급하지 않으며 또한 명성이 들려서 도달함을 구하지 않았다.
(出《神仙傳》)
신선전 출전
皇初平
황초평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