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 최초 등록일
- 2009.06.28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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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성애
동성애에 대한 과거시대의 예
목차
I. 동성애란?
II. 동성애자 구분
Ⅲ. 동성애특징
Ⅳ.다양한 원인
Ⅴ. 우리 역사속의 동성애
Ⅵ. 동성애에 대한 나의 생각
본문내용
Ⅴ. 우리 역사속의 동성애
남색에 빠졌던 고려의 왕들。
-고려 7대 목종
목종은 19세라는 별로 어리지 않은 나이에 왕으로 즉위하였지만.. 정치적 야심이 강한 모후의 섭정으로 정국운영에 주도권을 가지지 못하였다. 모후와 김치양의 권력독단은 조정의 기능을 상실시킬 정도로 심하자.. 목종은 나름대로 김치양을 내쫓으려고 시도하였지만.. 천추태후의 강력한 후원을 받고 있는 김치양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지 못하였다.이렇게 정권에서 소외된 목종은 정사에 환멸을 느껴 소홀히 하고 남색을 즐기기 시작 하였다. 유행간이란 인물이 용모가 아름다웠는데.. 목종은 그의 용모를 사랑하여 그를 총애하였다. 목종의 신임을 한몸에 받게 된 유행간은 합문사인으로 오르게 되고.. 목종의 측근으로서 정사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목종은 정사에 관해 항상 유행간에게 의논하였고, 항상 유행간의 뜻대로 정사가 이루어졌다. 왕을 조정하게 된 유행간도 점점 오만해졌고, 백관들에게 턱과 눈빛으로 지시를 하기도 하였다. 유행간은 유충정이라는 인물을 목종에게 소개해 주었다. 유충정은 발해출신으로 용모가 수려하여 목종의 눈에 들게 되었다. 유행간과 유충정은 이후 계속 정사를 좌지우지하였다. 목종12년(1009) 봄 숭교사를 다녀오던 목종은폭풍을 만난 다음부터 심약해지기 시작하였다. 며칠 뒤 연등회 도중에 기름창고에 불이 붙어 천추전에 화재가 나고.. 궁궐 일부와 창고가 소실되는 일련의 악재가 겹치자 결국 병을 얻게 되었다. 병으로 누운 목종은 좀처럼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신하들도 만나지 않았다. 따라서 유행간과 유충정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모두 왕명이 되었다. 목종은 자신의 병세가 악화되자 대량원군(왕순)을 후계자로 결정하였으나, 유행간이 이를 반대하였다. 결국 목종은 채충순과 최항을 몰래 불러 자신의 뜻을 전함으로써.. 왕의 총애를 받던 유행간과 유충정은 후계자문제결정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었고.. 강조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