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민비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2.03.08
- 최종 저작일
- 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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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비에 대해서 간략하게..
목차
1.출신과 간택
2.대원군과의 갈등
3. 친청정책
4.을미사변과 민비시해
본문내용
1.출신과 간택
여덟살의 어린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혈혈단신으로 자랐다.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의 천거로 왕비로 간택되어 1866년(고종 3) 한 살 아래인 고종의 비로 입궁하였다.
2.대원군과의 갈등
민비가 왕비로 간택된 것은 외척에 의하여 국정이 농단된 3대(순조·헌종·철종) 60여년간의 세도정치의 폐단에 비추어 외척이 적은 민부대부인(閔府大夫人)의 집안에서 왕비를 들여 왕실과 정권의 안정을 도모한 흥선대원군의 배려에 의해서였다.
소녀시절부터 집안일을 돌보는 틈틈이 《춘추 春秋》를 읽을 정도로 총명했으며, 수완이 능란한 민비는 수년 후부터 곧 왕실정치에 관여하여 흥선대원군의 희망과는 달리 일생을 두고 구부간(舅婦間)의 정치적 대립으로 각기 불행을 겪어야만 했다.
민비가 대원군과 사이가 갈라진 것은 궁녀 이씨의 몸에서 태어난 왕자 완화군(完和君)에 대한 대원군의 편애와 세자책립 공작 때문이라 하나, 그 배후에는 민씨를 중심으로 한 노론(老論)의 세력과 새로 들어온 남인(南人)과 일부 북인(北人)을 중심으로 한 세력간의 정치적 갈등이 작용했다.
민비는 갖은 방법으로 흥선대원군을 정계에서 물러나도록 공작하여 마침내 대원군의 정적(政敵:趙成夏를 중심으로 한 趙大妃 세력, 趙斗淳·李裕元 등 노대신 세력, 金炳國을 중심으로 한 안동김씨세력, 대원군의 장자 載冕과 형 李最應 세력 및 崔益鉉 등 유림세력)과 결탁하고,
참고 자료
高宗實錄, 日省錄, 承政院日記, 閔妃執權期韓廷對外關係의 國際政治的 考察(金幸子, 梨花女子大學校, 1966). 〈李元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