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 신윤복
- 최초 등록일
- 2009.06.15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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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혜원 신윤복에 관해서 - 혜원 전신첩을 중심으로
목차
1. 서론
2. 본론
(1) 생애
(2) 혜원전신첩
(3) 작품소개
3. 결론
*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서론
· 혜원 신윤복이 남긴 혜원전신첩 30점 중에 <무녀신무><쌍검대무><기방무사><단오풍정><주유청강><월야밀회>와 신윤복이 몇 작품 남기지 않은 산수화 작품 중 <송정아회><귀로산수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인도> 등 이렇게 9개의 작품을 통해서 신윤복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론
(1) 생애
· 혜원(蕙園)은 화원 신윤복(申潤福) (1758~?)의 아호이다. 그의 자(字)는 입부(笠夫), 본관은 고령이며 중인 출신의 화가 집안으로 부친은 신한평(申漢枰)이고 모친은 홍천피씨(洪川皮氏)이다.
그의 아버지 신한평 또한 정조왕(正祖王)의 어용화사(御用畵師)이었으므로 그 가업을 이어 화원이 되었다. 혜원의 생사년(生死年)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대체로 늦은 18세기부터 이른 19세기(世紀) 무렵에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와 더불어 활동한 작가였다. 다만 김홍도(金弘道)보다 혜원이 약간 후배였음은 그의 부(父) 신한평(申漢枰)이 김홍도와 더불어 정조왕의 어진(御眞)을 그렸다는 『정조실록(正祖實錄)』의 기사(記事)로써 짐작이 된다.
원래 혜원은 틀 잡힌 산수화가로서도 주목받을 만한 필격을 드러낸 사람이었으나 김홍도와 더불어 그 당시 이른바 속화를 개척해서 오늘날 그는 풍속화가로서 그 업적을 더 평가받게 되었다. 그의 풍속화는 주로 서민사회의 생태 특히 풍류 남아들과 기녀, 주인과 여비(女婢), 양가의 부녀와 승려에 이르는 넓은 분야에 걸친 조선인들의 사랑과 색정(色情)의 생태를 그리기에 상당한 실력을 발휘한 작가였다.
(2)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 이 화첩은 30면(面)에 나누어 그린 작품으로서 이제까지 알려진 혜원의 대표적인 연작 풍속화첩이며 따라서 그의 이 부문 작품 중에서는 가장 화의(畵意)와 그 기법이 세련되어 있다. 이 작품은 미술 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당시의 적나라(赤裸裸)한 사회상의 일면과 풍부한 민속을 사실한 희귀한 자료로서도 그 의의가 적지 않다.
참고 자료
정병모, 『한국의 풍속화』, 한길아트, 2000.
이태호, 『조선후기 회화의 사실정신』, 학고재, 1996.
황효순, 「혜원 신윤복 연구」, 성신여자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3.
http://100.naver.com
http://enc.daum.net/dic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