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우리나라 경제에 영향을 미쳤던 주요 사건에 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9.06.07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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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경제에 영향을 주었던 주요 사건에 대하여 고찰한다.
1876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의 여러 치욕적인 사건들 중에서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 강화도조약과 3·1운동에 대해 집중 조사하였고 각각의 사건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을 발취해보았다. 한국경제사 A+ 레포트.
목차
Ⅰ. 서론 …………………………………………………………………………… 1
Ⅱ. 토지조사사업, 산미증식계획 ……………………………………………·· 2
(1) 토지조사사업
(2) 산미증식계획
Ⅲ. 강화도조약 …·…………………………………………………………·…·· 3
Ⅳ. 3·1운동 ………………………………………………………………………· 4
Ⅴ. 결론 …………………………………………………………………………… 6
(1)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의 교훈
(2) 강화도조약과 3·1운동의 교훈
참고문헌 …………………………………………………………………………·· 8
본문내용
Ⅰ. 서 론
일제 35년은 한국 민족의 장구한 역사상 단 한번 있었던 민족의 정통성과 역사의 단절의 시기였다는 점에 치욕적인 특성이 있다.
일본은 1860년대의 메이지유신을 전후해서 급격히 근대화의 길을 걸으면서, 종래 조선 정부의 대일외교정책에 순응하여 수동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던 대(對)조선의 외교방향을 능동화하여,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국권피탈에 이르기까지 긴 침략의 장정에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일본은 대원군의 하야로 개국으로 급전한 조선 정계의 기류를 타고, 조선의 문호 개방에 첫 수호국으로서 한반도에 상륙한 이래, 개화파와 수구파의 쟁패), 임오군란·갑신정변 등 격변 속의 조선정계에 교묘히 대처·편승하면서 꾸준히 세력을 부식하여 나갔다.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종래 조선의 종주국이었던 청국과 일전을 겨루어 청국세력을 한반도에서 밀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부터는 갑오개혁으로 조선의 개국 이래의 정치제도를 개혁하는 데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명성황후 시해(弑害)를 주도한 이후에는 한때 러시아 세력에 밀려나기도 하였으나, 러·일전쟁에 승리하여 한반도에서의 정치·군사·경제상의 우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1904년 2월 러시아와 전쟁중이던 일본은 한국 정부를 강압하여 한일의정서를 성립시켜 내정간섭의 발판을 만들고, 같은 해 8월에는 제1차 한일협약인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게 하여 고문정치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식민지화 공작에 들어갔다. 1905년 제2차 한일협약인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이에 따라 1906년 2월 통감부를 설치하고, 이른바 보호정치를 펴 외교권을 대행하는 등 실질적인 지배에 들어갔다.
이어 1907년 7월에는 헤이그특사사건을 구실로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 7조)을 강제하여 통감이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걸친 통치권을 전단하도록 하였으며, 한국인 대신 밑에 실권을 장악하게 하는 일본인 차관을 두는 차관정치를 실현하였다. 또한 ‘한국 사법 및 감옥사무위탁에 관한 각서’를 통해 한국의 사법권을 탈취하였으며, 이어 한국군대를 해산하였고 한일경찰관을 통합하여 한국 경찰관을 일본 관헌의 지휘감독하에 두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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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하. [조선토지조사사업연구]. 지식산업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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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봉. [3·1운동].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0.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
구글 백과사전 (http://www.goog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