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화폐] 쇼토쿠타이시.이토히로부미
- 최초 등록일
- 2002.01.17
- 최종 저작일
- 2002.01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1) 쇼토쿠타이시(아스카시대)[聖德 太子] (574 ~ 622) (스이코[推古] 30년)
▶종교전쟁으로 피어난 습합[習學]사상
▶호류사
(2)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
▶메이지 일본의 실력자 이토히로부미
▶이토 히로부미와 대일본제국 헌법
▶메이지헌법의 구조와 특질
본문내용
1889년 2월 11일에 제정. 공포되어 다음해 11월 9일부터 시행된 대일본제국헌법은 통칭 '메이지 헌법' 또는 '구헌법'으로 부르며, 제정 후 1947년 월요일까지 존속한다. 도쿠카와 봉건체제를 해체한 메이지 정부는 정치에 불만을 품은 사족(士族)들의 자유민권운동에 굴복하여 헌법제정에 열의를 보이기 시작, 1876년 9월 원로원에 헌법초안의 기초를 명한다. 원로원은 곧바로 국헌조사위원회를 구성, 각국의 헌법을 참조하여 1차 초고를 작성하고 1878년에 다시 제2차 초안을 만든다. 이 초안은 벨기에 헌법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민주적 색채가 너무 강하였으므로 부수파 정치인 이와꾸라 도모미 등의 강한 반대를 받아 재수정되어 1880년 '일본국헌안' 제 3차 확정안으로서 상주하지만 채택되지 않는다. 이 무렵 민간에서도 사의(私擬)헌법(개인이 사사로이 만든 헌법) 초안이 많이 제출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자유민권운동의 지도자인 우에끼 에모리의 헌법초안은 급진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 정부를 크게 자극하였으므로 정부도 마침내 헌법제정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국회개설 때까지는 헌법을 제정하겠다고 언명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