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과 민주주의
- 최초 등록일
- 2009.05.25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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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붕당에 대한 이해
목차
Ⅰ. 서론 - 붕당정치에 대한 옹호
Ⅱ. 붕당과 정당의 비교
1. 붕당에 대한 긍정적 시각
2. 보수정치와 개혁정치
3. 사림세력의 변질과 분열
4. 사림세력의 분열과정
5. 예송논쟁으로 본 붕당정치와 현대정치의 비교
1) 기해예송
2) 갑인예송
6. 붕당정치의 변질
Ⅲ. 결론 - 조선시대 붕당정치는 민주정치의 시작
본문내용
Ⅰ. 서론 - 붕당정치에 대한 옹호
우리는 어려서부터 세계 역사를 통해서 정치사를 배웠다. 그리스 역사에서는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펼쳐진 아테네 민주주의를, 로마사에서는 로마 공화정과 귀족당에 대항한 평민당 출신 호민관의 활약을, 영국사에서는 휘그당이니 토리당이니 하는 전근대 정당사를 배웠다. 곧 서구의 역사에는 ‘정치’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배운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사에 그러한 정치가 있다는 사실은 배우지 못했다. 차라리 배우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우리는 고작 ‘우리 민족은 지금도 모이기만 하면 당파를 만드는 후진 국민이므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질서와 통치이고, 이는 조선시대 이래로 내려온 당파를 좋아하는 민족성 때문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붕당의 역사는 일제가 왜곡시키려 했던 대상이었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사를 내정의 난맥과 외압에 의한 굴욕의 역사로 그림으로써 망국을 합리화하려는 것이었고, 붕당은 이러한 목적을 위한 호재가 되었다. 붕당이 부분적으로 부정적인 요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식민사학에서 보는 붕당에 대한 시각은 과장과 악의가 심했을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이 ‘당쟁은 곧 악’이라는 역사 인식의 주입이 집요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면에서 많은 부담을 주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의 붕당정치는 근대와 현대의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맹아로 보는 것이 옳다. 당쟁은 당시의조선조 사회가 취할 수 있었던 최선의 언로였다. 당시의 삼사, 즉 의회제도가 없었던 당시에, 부패한 관리를 탄핵하던 사헌부, 왕의 비리를 간언하던 사간원, 그리고 왕의자문에 응하던 홍문관은 언로를 위한 최선의 정치적 도구였다. 이곳에서 오고간 정론을 당쟁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토론 정치의 조선조적 표현이었을 뿐이다.
곧 당파싸움은 무조건 나쁘다는 선입관을 버리고, 조선에서 특이하게 오랫동안 지속된 붕당과 붕당정치의 진정한 모습을 새롭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