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에 관하여..(죽은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 최초 등록일
- 2009.05.25
- 최종 저작일
- 2009.03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경제학자 케인즈에 관하여 `죽은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부분을 독후감 형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케인즈는 1883년 빅토리아 왕조풍의 청교도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존 네빌 케인즈는 저명한 논리학자이자, 경제학자 였으며, 어머니인 플로렌스 에이더는 여성으로서 케임브리지의 시장을 역임할 만큼 교양과 지성을 갖춘 인물 이였다.
그러나 케인즈는 이러한 부모님들과는 다르게 철학적이고 교양적인 면을 탈피하고자 언제 어디서나 장난을 즐겼으며, 청교도의 윤리나 교양과는 거리가 먼 사람 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보인 케인즈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각종 수학상을 휩쓸었고, 연극무대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케임브리지의 킹스 칼리지에서는 제 세상을 만난 듯이 더욱 빛을 발하였다.
그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들과 깊은 교우관계를 맺고 ‘사도들’이라는 엘리트클럽에 가입하였다. 이 집단에는 버트런트 러셀, 앨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등의 철학자들과, 리턴 스트레이치, 포스터, 레너드 울프 등 각종 문화와 예술을 주도할 인물들이 속해 있었다. 케인즈는 이곳 집단에서 매일 같이 3-4시간의 토론을 통하여 케인즈는 나중에 각종 국제 정상회담에서 빛을 발휘하게 된다.
케인즈는 경제학 연구보다는, 책 미술품 수집과, 각종 예술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대학에서는 경제학보다 수학을 전공하였다.
그가 경제학을 접하게 된 계기는 대학졸업 후 마샬의 ‘경제원론’을 접하면서 쓴 논문에 마샬의 격려하는 글을 보고서 자신이 경제학에 소질이 잇다는 것을 알고서 부터이다. 이토록 케인즈의 초창기 경제학은 마샬의 것이 기초가 되었고, 점차 많은 책을 섭렵함에 따라 그는 권위있는 경제학지인 ‘경제학회지’의 공동편집인이 된다.
참고 자료
죽은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