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와 남북국 시대
- 최초 등록일
- 2009.05.25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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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해동성국 발해
*동쪽의 번성한 나라 발해
2. 발해의 정체성
*발해의 유물과 유적
3. 결론
*참고자료
본문내용
1. 해동성국 발해
*동쪽의 번성한 나라 발해
발해는 대조영이 698년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유민을 수습하고 고구려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말갈족과 연합하여 세운 나라이다. 삼국유사 권1 말갈발해 편에 의하면 ““의봉 3년 고종무인년(678년)에 고려(고구려) 유민들이 태백산(백두산) 아래에 의거하여 나라를 세우고 ‘발해’라고 하였다(儀鳳三年高宗戊寅高麗殘 類聚北依太白山下 國號渤海)”고 한다. 발해는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하고자 하였고 한때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 동부•연해주•한반도 북부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으며 925년 12월 거란의 공격에 의해 멸망한다.
대조영의 뒤를 이은 무왕은 일본과 수교하여 사신 왕래와 문물교환을 자주 하는 한편, 나라 안에서는 무력을 양성하여 침략 전쟁을 펼쳤다. 3대 왕인 문왕은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북으로는 불열말갈과 철리말갈을 포섭하였고, 또한 남쪽으로 용흥강 주변까지 발해의 영토를 확장하였다.
무왕과 문왕 이후 왕족간의 혼란스러운 왕위다툼은 선왕에 이르러 비로소 종식된다. 선왕의 이름은 대인수, 대조영의 아우인 대야발의 4세손인 그는 연호인 건흥에서 볼 수 있듯, 발해를 다시 번영시킨 군주였다.
선왕의 정복활동은 요하 지역을 비롯해 신라 국경까지 공략하기에 이른다. <요사>에는 "대인수가 남쪽으로 신라를 평정하고 북쪽으로 여러 부락을 공략하여 군과 읍을 설치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신라는 발해의 팽창을 대비하기 위해 한산 이북 지역의 주민 1만을 동원해 패강 장성 300리를 축조하였다. <신당서>에 보면"해북의 여러 부족을 쳐서 크게 영토를 넓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무왕 이후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던 흑수말갈이당나라에 대한 조공이 중단되고발해의속국으로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선왕때 발해의 영토는 건국 이후 광대한 영토를 이룩하게 된다. 서쪽으로는 요하 동쪽에 있었고, 동쪽으로는 연해주 북으로는 송화강 유역, 남으로는 패강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였다. 워낙 넓다보니 선왕은 기존에 설치되었던 3경(상경용천부, 중경현덕부, 동경용원부)외에 서경압록부와 남경남해부를 설치하여 5경 15부 62주로 구성했다.
참고 자료
- 누리 한국학 DB시리즈: 삼국사기, 삼국유사, 발해사 연구 (http://k5000.nurimedia.co.kr/intro.asp)
- 발해역사에 관하여, 양대언 교수
- 《발해의 대외관계사 -남북국의 형성과 전개-》(한규철, 신서원,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