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대구. 대구 사람들...

등록일 2002.01.08 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900원

목차

대구읍성, 왜 철거되었나?
'닫힌 마음'에서 다시 '열린 마음'으로
◎ 정리를 하면서........
◎ (참고자료) 대구에 역사 고대에서~현대까지

본문내용

1. 대구읍성, 왜 철거되었나?
읍성이란 지방 주요 지역에 관부(官府)와 민거(民居)를 둘러쌓은 성으로써 지방 군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성이다.
이러한 읍서은 대구에도 있었으며 이러한 대구 읍성 풍경은 낯선 외국인 선교사 눈으로 보아도 정말이지 아름다운 곳이였다고 한다.
허나 이러한 읍성에 생명은 1906년 일본인들의 성곽철거요구로 파괴되고 그후로 흔적을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1905년 대구 전역에 상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일본인들이 그들의 욕망을 가로막고 있는 대구 읍성을 허물기 시작한다.
성을 허무는 것은 문화적 정체성를 파괴하고 거기다 사회적 경제권을 빼앗고자 하는 그런 이유에서 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일제 경제적 침략에 있어 좀더 이익과 자리(위치)를 추구하려는 것이라 보면 될 것이다. 여기서 대구에 군수였던 박중양에 큰 역할에 우리민족에 문화적 정체성은 무너지고 그후 일본상인들이 들어와서 경제활동을 시작하여
시장 자본을 장악하는 발판을 다지게 된다.

(조선인이면서 조선에 피와 살을 도려내는 조선인 박중양)
박중양 그는 오늘날 친일파였던 사람들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경부선 개통 이후 급속히 늘어난 일본인과 경북관찰사 사이에 대립과 충돌이 빈번하자 박중양이 조정에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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