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마한 사회 영산강 유역 세력의 존재 양상과 백제의 세력 확장에 따른 역사적 변동 과정을 정리한 글입니다.
목차
머리말
1. 마한과 영산강 유역의 고대 사회
1) 마한 사회의 전개 과정
2) 영산강 유역 사회의 부각 시점
2. 백제의 지배력 확대와 마한 사회의 변화
1) 사료의 검토와 맥락
2) 백제의 세력 확장․변동과 마한 사회의 세력 변화 관련 사료 기록과 검토
3. 영산강 유역 사회의 묘제 변화와 백제의 세력 진출 관계
1) 영산강 유역 사회의 묘제 검토
2) 영산강 유역 묘제의 변화
맺음말
본문내용
이 글에서 우선 정리되는 작업은 영산강 유역 나주시 반남면 및 다시면 지역 거대 고분 복합체의 특수성에 의한 축조 세력의 성격과 사회상 파악, 거대 고분에 시도된 다양한 묘제의 규칙적 계기성 등의 고고학적 성과와 사료 기록에 의한 영산강 유역 해당 지역의 중요한 사회적 변화 검토이다. 그리고 더욱 비중을 두는 작업은 이들의 검토를 바탕으로 영산강 유역의 사회 변화 요인으로 백제 간접․직접 지배 방식을 비중 있게 상정하고 이를 강조하는 논의이다.
앞의 검토는 그 동안 지속되어 왔던 영산강 유역 나주시 반남면․다시면 일대의 영산강 유역에 관한 고고학적 성과의 정리 수준에 가까우며 뒤의 논의는 사로국이 주변 소국을 편제하고 신라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확인되는 지배방식의 변화 양상에 주목한 판단에 해당된다.
1. 마한과 영산강 유역의 고대 사회
1) 마한 사회의 전개 과정
삼한은 馬韓․辰韓․弁韓으로, 일반적으로는 기원전 2세기 전후를 기점으로 기원후 3세기경까지 5~6세기 동안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반도 중부 이남의 여러 영역을 관할했던 세력일체를 말한다.
그 중에서 마한은 삼한사회의 주도 세력으로, 고구려․백제․신라가 고대 국가체를 형성하던 시기에 존속하다 백제와 신라 중심의 정치력에 복속 또는 편제되었던 세력이다.
『三國志』 魏書 東夷傳 韓條에는 삼한 및 마한 관련 기사가 실려있다. 그 위치와 유래에 대해서는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古之辰國也 馬韓在西’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마한 세력체의 구성 규모는 ‘凡五十餘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근의 의견에서 마한 사회의 전개 단계는 초기․전기․중기․후기․말기, 5시기로 구분된다
마한 초기는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 전후의 시기까지로 세형 동검 문화를 기반으로 삼는 세력이 한반도 중․서남부를 중심으로 세력 권역을 형성하던 시기이다. 마한 전기는 기원전후로부터 기원후 3세기 중엽까지로,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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