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석, 내일을 여는 집] 감상문, 서평, 독후감, 현대문학, 양승국교수님
- 최초 등록일
- 2009.04.29
- 최종 저작일
-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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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양승국 교수님의 교양강좌 `한국 현대문학과 사상`에서 제출한 리포트입니다. A-받았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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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가난에 찌든 어머니의 차비조차 풍족하게 내줄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운 아들이 있다. 가난이라는 군주에게 삶을 지배받는 그에게 ‘다이아몬드’가 수놓인 작업복, 즉 보수가 주어지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람이 있다. 형편이 어려운 아들은 그야말로 황송한 심정으로 자신을 고용해준 사람에게 헌신하리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선발과 합격, 그리고 노동과 보수라는 형식으로 맺어지는 관계는 금전적인 주종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고용주는 고용인을 은혜의 차원에서 고용한 것이며, 따라서 고용인이 고용주에게 무한한 복종을 맹세해야할 의무가 있는가? 과도한 질문은 피하고서라도, 고용주(主)와 고용(用)인이라는 용어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편의상 이 글에서는 고용주와 고용인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기로 하겠다.) 과거 중세시대의 엄격한 주종관계의 개념은 인간존중과 자유, 평등의 이념을 기치로 삼은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그 위치를 상실한지 오래다. 그러나 그 당연한 인간존중과 자유, 평등의 개념이 노동을 진정으로 신성하게 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방현석의 <내일을 여는 집>은 희망과 정의로움으로 넘칠 ‘내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에는 다소 노골적인 암시가 여러 곳에 등장한다. 유아원에서 쌀 과자라는 생존권을 얻기 위해 투쟁하던 어떤 아이의 사례는 특히 억지스러운 면이 있으나 유머러스한 장치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고용주-고용인의 관계와 부부관계를 오버랩하는 것은 흥미로운 구조이다. 사소한 행동거지들이 습관적으로 굳어져서 남편이 아내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는 것은, 원초적으로 평등한 인간인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가 금전이라는 수단적 매개에서부터 주종관계로 변모하게 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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