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마리아의 도상 변천 연구
- 최초 등록일
- 2009.04.21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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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회적 변화와 인식의 변화에 따는 마리아 도상의 변천에 대해 정리한 자료이다.
각 시대의 대표적 사회적 특징과 양식에대한 설명, 주요작가에대한 설명을 작품과 연관지어 설명하였기 때문에 사회적 변화에 따른 마리아 도상 변천에대한 리포트작성에 참고하기에 좋은 자료이다.
목차
동로마제국의 비잔틴 미술
성상파괴운동 이후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베네치아 미술
15세기 플랑드르 미술
매너리즘 시기
바로크
<참고자료>
본문내용
동로마제국의 비잔틴 미술
역사의 중심이 서로마에서 동로마로 옮겨오던 시대,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오던 시대,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전이되던 4~5세기의 전환기는 유스티니아누스 (제위527-565)황제 재임기간중 동로마의 기독교 문화를 확고하게 정착시켰다.
이 작품은 성상(아이콘)으로서의 도상이다.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되고 기독교 도상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초월적 도상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마리아의 도상은 초월적 도상을 띔에도 불구하고 이미 세상을 떠난지 500~600년이 된 시점에 초상을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 했으며 도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양쪽 눈과 눈썹의 위치가 대칭되지 않아 당시의 회화양식이 함께 사용되어 현세의 사람을 모델로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성상파괴운동 이후
성상의 원래 목적은 초상화로서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림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되자 이 폐단을 막기 위해 레오3세가 성상파괴 정책을 결정하고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5세(제임741-775)기간 중 정책이 강화되어 많은 성상들이 소실되었다.
843년 화후 테오도라에 의해 그림의 신성여부보다 매개체로의 가치를 인정하는데 크게 작용하여 이를 계기로 비잔틴 미술이 제 2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성상파괴 운동의 시련을 겪은 뒤 비잔틴 미술은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제정일치 체제에서 정치적 그림이 강화되는데 콘스탄티노플을 바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하기아 소피아를 지어 마리아에게 바치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모자이크로 제작함으로서 수호신으로서의 마리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도상이다.
이 도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비례를 고려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아기예수의 모습이 비례로 보면 성인의 모습과 유사하며 단지 크기만 줄어있는 모습이다. 또한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은 슬퍼 보이는 모습이다.
이 도상에서의 마리아는 아기예수의 죽을 미래를 알고 슬퍼하는 모습이다. 이렇듯 비잔틴 성상에서의 미술은 사실적 표현이기보다, 교리의 전달과 시공을 초월한 성스러움이 중요시됨을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서양미술사 / 이은기.김미정 지음 - 미진사
클릭, 서양미술사 동굴벽화에서 비디오아트까지 / 캐롤 스트릭랜드 지음 - 예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