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속의 한국
- 최초 등록일
- 2009.04.21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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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대속의 한국의 상황과 교통수단에 대한 자료수집 및 고찰
목차
없음
본문내용
□교통수단
몇 일전 숭례문이 불타는 모습을 TV뉴스를 통해서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다. 숭례문에 현대와 같은 모습을 갖추기 전, 식민지 지대의 한국을 지배하던 일본은 전차의 운행을 위해 숭례문의 주위의 성곽을 모두 걷어 내었었다. 근대의 몸부림 속에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과 교류의 장소였던 “길”이 서서히 수송의 합리성만을 내세워 자연과의 부조화를 이끌어내는 요소가 되고 말았다. 지금의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숭례문 또한 어색하게 보일 때가 있는데, 이는 우리가 수송의 합리성에 이미 길들여져 변화하기 전의 만남을 이끌어내는 마당을 잊어버렸기 때문은 아닌지 되짚어보게 하였다. 서울의 교통의 중심지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던 숭례문을 따라가면 종로가 나오고 계속해서 진행하다 보면 세종로가 보인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도로가 생기기 이전에 1960년대까지 서민의 발이었던 전차와 종종눈에 띄는 자동차의 풍경은 모더니즘의 정서와 너무나도 일치한다. 이미 일제 시대 이전 1898년 서울의 서대문 청양리 구간에 처음 개설된 전차는 당시 조선을 찾았던 외국 사람들조차 놀랄 정도로 도입시기가 빨랐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교토와 도쿄 다음으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이는 중국보다 앞서는 기록이라는 것을 조사결과 알게 되었다. 전차와 자동차 등의 모더니즘시대의 이동수단과 우리의 문화를 탐구하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경험일 것이다.
뒤틀린 근대성의 상징으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전차와 자동차의 운행을 위한 도로가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19세기 후반의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전쟁보급로 확보와 병참선의 개설 등의 야욕으로 도로를 닦았다. 지금도 일본은 그들의 만행이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일조를 했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 자료
2004 노형석 생각과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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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황순하 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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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문화에 시동걸기
2002 윤양미 도서출판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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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2005 정규홍 학연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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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재 수난사
2007 최규진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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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보는 창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