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학] '사령운(靈謝運)과 산수시'에 대하여

등록일 2001.12.21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900원

목차

1. 사령운(靈謝運:385-433)에 관하여
2. 사운령의 작품세계
3. 사령운의 계승·발전

본문내용

1. 사령운(靈謝運:385-433)에 관하여
동진이 멸망한 후 중국은 이르나 남북조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북은 北魏, 남은 宋으로 바뀌어 장기간 대치하면서 남북은 서로 다른 문화 아래 다른 문학 양상을 띠게 된다. 남조 송대 초기에는 사령운(靈謝運), 안연지(顔延之), 포조(鮑照)등이 출현하여 이른바 사안포(靈顔鮑)의 원가(元嘉)문학을 장식하게 되는데,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은 역시 사령운이다. 진 효무제 태원10년에 나서 송 문제 10년에 죽었으니 나이 49세였다. 그는 동진의 명장인 사현(謝玄)의 손자로서 당시 제일의 가문을 자랑하는 호족이었다. 조부가 죽은 후 사령운은 '강락공(康樂公)'이라는 벼슬을 세습받게 되고, 이때부터 세상에서는 그를 '사강락(謝康樂)'으로 칭하게 되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손이 귀한 가정에서 자라 성격의 사치스러움이 극에 달했으며, 그가 사용하는 의복과 수레들은 모두 호화로웠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재기를 발휘한 그는 동진이 멸망하고 송이 들어서자 정치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나날들을 보내다가 결국 영가(詠嘉)태수라는 절강성 내의 한직에 임명되는데, 오히려 이를 계기로 그의 문학적인 성취는 더욱 빛나게 되었다. 그는 중국 남방의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 정사는 접어둔 채 산수 유람만을 일삼으면서 세상에서 추종하는 주옥같은 산수시를 남기게 되었고, 중국 문학사에서 산수시의 비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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