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 민족의 시련 - 왜란과 호란

등록일 2001.12.13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임진왜란

2.정묘호란

3. 병자호란

본문내용

왜군은 도요토미의 계획에 따라 선조 25년(1592) 4월 부산에 상륙하였다. 부산첨사 정발(鄭撥)과 동래부사 송상현이 각기 죽음으로써 부산과 동래를 지키었으나, 끝내 이를 함락시킨 왜 육군은 서울을 향하여 북상하였다. 조정에서는 야인(野人)의 침략을 진압하여 이름을 떨친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申砬조)에게 한 가닥의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그가 충주에서 패하자 이에 선조는 인심이 극도로 흉흉한 가운데 의주를 향해 서울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고, 두 왕자를 함경도와 강원도로 보내 의병을 모집하게 하였으며, 한편으로는 명(明)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그렇지만 두 왕자의 모병에 응하는 자도 없었고, 게다가 그들은 왜병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암담한 현상은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농촌을 황폐케 한 위정자들의 책임이었다. 거의 무방비 상태인 전국이 왜군에게 짓밟히게 되었다. 전국시대의 전란기에 처하여 많은 전투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또 조총을 사용하고 있는, 왜군을, 훈련이 없는 적은 수의 군대를 가지고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