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연구] 박지원 연구
- 최초 등록일
- 2001.12.12
- 최종 저작일
- 2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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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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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연암의 생애
Ⅲ. 연암의 사상
Ⅳ. 연암의 문학 성향
Ⅴ. 연암의 문학 작품
Ⅵ.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한국사에 있어서 조선 후기는 중세 사회의 틀 안에서 근대를 지향하는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태동했던 시대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민중의 사회적 성장과 민중 문화의 발달 등 근대 지향의 계기를 마련하는 새로운 변화들이 대두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오늘날 '실학파'라 일컫는 진보적 문인 학자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들은 종래의 관련학자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들로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박지원이다. 당시 박제가, 홍대용 등과 함께 청조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이른바 북학파의 영수로 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자유 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을 발표, 양반계층의 타락상을 고발하고 근대사회를 예견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함으로써 많은 파문과 영향을 끼쳤다.
여기서는 그의 사상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할아버지는 지돈녕부사 필균(弼均)이며, 아버지는 사유(師愈)이다. 그의 가문은 노론(老論)의 명문세신(名門世臣)이었지만, 그가 자랄 때는 재산이 변변치 못해 100냥도 안 되는 밭과 서울의 30냥 짜리 집 한 채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영조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도 척신(戚臣)의 혐의를 피하고자 애썼으며, 청렴했던 조부의 강한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1752년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그의 처삼촌이며 이익(李瀷)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던 홍문관교리 이양천(李亮天)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3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에 전념, 경학(經學)·병학·농학 등 모든 경세실용의 학문을 연구했다. 특히 문재(文才)를 타고난 그는 이미 18세 무렵에 〈광문자전 廣文者傳〉을 지었다. 1757년 〈민옹전 閔翁傳〉을 지었고, 1767년까지 〈방경각외전 放閣外傳〉에 실려 있는 9편의 단편소설을 지었다. 이 시기 양반사회에 대한 비판이 극히 날카로웠으나, 사회적 모순은 대체로 추상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참고 자료
http://dragon.skku.ac.kr
http://www.dajaba.com
http://user.chollian.net/~geumdang/main1-2.htm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http://myhome.shinbiro.com/~sjstory/hime.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