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아악,향악,당악

등록일 2001.12.10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아악
당악
향악

본문내용

고려시대의 음악사는 의종 말년(1170)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된다.
전기는 향가와 화랑의 전통, 팔관회와 연등회 등 통일신라의 유품이 강하게 전승되는 한편,중국으로부터 아악이 전래되어 향악, 당악, 아악의 전통이 정립되었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유품이 점차 사라지고,중국에서 들어온 아악의 전통도 주변 정치상황에 기인하여 문란해졌고, 이러한 사회상을 반영하는 새로운 음악이 출현하였다.
고려시대의 음악을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여 각 분야별 변천과정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고려 전기는 태조(太祖)부터 의종(毅宗)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에는 중국의 아악과, 속악으로서의 당악이 수입되어 소위 아·당·향의 구분이 확립되는 시기이다.

아 악(雅樂)

아악은 종묘·사직 등 국가의 중요한 제사에 사용된 중국 고대의 치식음악이다. 아악은 금·석 ·사·죽·포·토·혁 ·목의 팔음(八音) 악기를 당상악(堂上樂 : 登歌)과 당하악(堂下樂 : 軒架)으로 구분 배치하여 율려(律呂)에 맞게 교대연주(연奏) 하는 독특한 음악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악장(樂章)과 춤이 반드시 따르는 악, 가, 무 총체의 음악으로서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가장 이상적인 음악으로 인식되어 왔다.

아악은 고려 예종 11년(1116)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예종은 송과 교류하면서 휘종에게 외교사절과 음악인을 보내어 아악의 한국수용을 청하였는데, 송나라에서는 고려가 새로이 아악전통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대규모의 악기와 의물(儀物), 악보(樂譜)를 구비하여 보내준 것이다. 이때 고려에 소개된 송의 아악은 숭녕(崇寧) 4년(1105)에 송의 휘종이 새로 정비한 대성아악(大最雅樂)으로서 이전의 아악과는 몇가지 차이가 있었다. 즉 송 휘종은 황종(黃鍾)의 음높이를 새로 결정하고, 악기와 악장(樂章)에 각각 정성(正聲)과 중성(中聲)의 구분을 두었으며, 금(琴)의 종류에 1현금·3현금·5현금·7현금·9현금의 5등금(五等琴)제도를 둔 것이었다. 고려에 수용된 대성아악기는 중성·정성의 편종과 편경, 5등금과 슬 및 중성·정성의 지 ·적(笛) ·소 ·소생(巢笙) ·화생(和笙)·우생(宇笙) ·훈(塤) ·박부(搏부)·진고(晉鼓)·입고(立鼓 일명 建鼓. 건고와 비고, 응고 셋이 한 틀을 이룸)·축·어의 20종에 달하고,수량만 해도 등가악기 30점, 헌가악기 374점이라는 대규모였으며, 560개의 편종·편경의 무게만 하더라도 대단한 것이었다. 이처럼 대규모의 아악기가 수용된 것은 한국음악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더우기 송나라에 아악을 청하러 간 고려 사절단은 단지 아악기만을 받아 온 것이 아니라, 송나라에 머물면서 아악을 교습받고, 대성부(大晟府)에서 펴낸 악보를 받아 옴므로써 고려에서의 아악연주 전통을 가능하게 하였다.


당 악(唐樂)

고려시대에 당악이라 지칭된 음악은 송(宋)나라의 음악이다. 통일신라로부터 이어받은 당악의 기반 위에 11세기에는 문종(文宗)이 적극적으로 당악의 수용을 요<fo<font color=aaaaff>..</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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