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비명을 찾아서 서평
- 최초 등록일
- 2001.12.09
- 최종 저작일
- 2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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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들어가며
2. 代替歷史小說의 기능
3. 歷史, 필연인가 우연인가
4. 現實과 許久 구분 못하게 하기
5. 碑銘의 의미
6. 열린 民族主義
7. 맺는 말
본문내용
1.들어가며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하얼빈 역에서 6발의 총성과 비명, 그리고 '코레아우라'(대한만세)라는 외침이 들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이또우 히로부미 저격사건이다. 이 사건의 소식은 곧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동경일일신문과 대한매일신보 등에서는 호외가 쏟아져 나왔고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 모두 안중근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당시 중국의 국가 주석이었던 원세개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듣고 직접 글을 지어 찬양하기도 하였다. 이또우 히로부미는 일본에서는 일본 헌법의 초안을 만든 사람으로 일본 근대화의 은인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1984년까지는 일본의 지폐의 모델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을사조약을 강제로 성립시키고 조선의 초대 통감을 지내고 일본으로 돌아가 추밀원의 의장이 된 침략의 우두머리로 알려져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본의 제국주의도 이 사건으로 인하여 잠시 멈칫 했을 것이며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게 그 당시의 한국의 현실을 알리는 데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현재의 총리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름 없는 한국의 청년의 총에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본은 대단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安重根義士輓) ― 당시 중국 주석이 쓴 시
平生營事只今畢 평생을 벼르던 일 이제야 끝났구려
死地圓生非丈夫 죽을 땅에서 살려는 것은 장부가 아니고말고
身在三韓名萬國 몸은 한국에 있어도 세계에 이름 떨쳤소
生無百世死千秋 살아선 백 살이 없는데 죽어서 천 년을 가오리다
참고 자료
없음